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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세무조사로는 세금 추징 못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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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13면

사건 개요
관할 세무서에서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부가가치세 추징한 뒤 다시 특별세무조사를 해 부가가치세를 더 내라고 통보함
판결 내용
“같은 세목, 같은 과세기간에 대해 중복해서 실시한 세무조사에 기초해 이루어진 과세처분은 위법하다”

개인이나 법인을 막론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온갖 절세(節稅)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그것도 부족해 불법적인 탈세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다. 이에 맞서 세무당국은 세무조사라는 무기를 앞세워 탈세를 추적한다.

세무조사가 시작되면 개인ㆍ법인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온순해진다. 그것은 세무공무원이 질문검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검사권이란 납세의무자가 신고한 과세표준 및 세액에 오류ㆍ탈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납세의무자나 관계인에게 질문하고 서류ㆍ장부ㆍ물품 등을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만일 납세의무자가 세무공무원의 질문검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조세범처벌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적정한 과세를 위한 세무공무원의 질문검사권 행사와 그에 따르는 납세자의 권리침해(영업의 자유 및 프라이버시의 침해 등)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이 생긴다.

A씨는 인천에서 여러 채의 건물을 갖고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데, 관할 세무서장이 1개월에 걸쳐 세무조사를 해 임대수입을 누락한 사실을 발견, 부가가치세를 3700만원 추가로 내라는 경정(更正)처분을 했다. 그 뒤 A씨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은 A씨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변칙적으로 증여했다는 의혹을 포착해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부가가치세 경정처분을 한 것과 동일한 과세기간에 임대수입이 누락된 사실과 매입세액을 부당공제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종합소득세 3억4000만원 외에 부가가치세 1억5700만원을 증액하는 재경정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관할 세무서의 세무조사(부가가치세 경정조사)와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개인제세 특별세무조사)가 중복세무조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재경정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재경정처분은 관할 세무서장이 이미 세무조사를 한 것과 같은 세목, 같은 과세기간에 대해 중복해 실시한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중복세무조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서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4두12070 판결).

국세기본법에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납세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조항들이 명시돼 있다. 납세자 권리헌장을 교부받을 권리, 동일한 세목ㆍ동일한 과세기간에 대해 중복조사를 받지 않을 권리, 세무조사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이다.

그러나 이런 규정들이 선언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을 뿐,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중복조사금지 규정에 위배해 이뤄진 세무조사가 위법하다 하더라도, 그것에 기초한 과세처분의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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