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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22. 이병철 회장 <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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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여자프로골프대회에서 시타를 하고 있는 이인희 한솔고문. [한솔그룹 제공]

고 이병철 삼성 회장 집안은 골프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3남3녀를 뒀다. 큰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에서부터 막내 이명희 신세계 회장까지 모든 자제들이 안양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배웠다. 이 회장께서는 골프를 통해 자녀의 인성교육과 체력단련을 시킨 것이다. 물론 당시 안양의 헤드 프로였던 내가 레슨을 담당했다.

우선 이건희 삼성회장부터 말하자. 나는 안양으로 옮기기 전부터 이 회장과 알고 지냈지만 자주 보게 된 것은 안양CC가 개장하고 난 뒤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통하는 데가 많았다. 이 회장은 학창시절 레슬링 선수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힘이 좋았다. 언젠가 안양CC 연습장에 앉아 있는데 이병철 회장께서 "니 둘이 팔씨름 한 번 해봐라"라고 제안했다. 둘이서 팔씨름을 시작했는데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다. 팔 힘에는 어지간히 자신 있던 내가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60년대 후반 쯤 싱글골퍼가 됐다. 아마추어로서는 보기 드문 장타를 날려 어떤 때는 나보다도 드라이버샷의 거리가 더 나갈 때도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조용하고, 말 수도 적었다. 그는 골프 외에 승마를 좋아해 나와의 라운드는 열 번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아버지를 어려워해서인지 선친과의 동반 라운드는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이건희 회장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안양을 그만두고 나서 몇 년이 지나 안양에서 라운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70년대 중반쯤 된 것 같다. 그 후로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언론을 통해 소식은 접하지만 지금 골프 실력은 어떨지 궁금하다.

한가지 더. 나는 이건희 회장의 장인인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과도 몇 차례 라운드를 했다. 그 때는 이건희 회장이 결혼하기 전이었다. 나중에 이병철 회장과 홍 회장이 사돈을 맺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분들끼리 인연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 회장의 골프실력은 출중하지 않았지만 '또박 또박' 골프였다. 그분 성품은 조용하고 온화한 편이었다.

큰 딸 이인희 고문과 막내 이명희 회장은 둘이 함께 올 때가 많았다. 자매끼리 내기를 하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여 참 보기가 좋았다. 이인희 고문은 나보다 10살 정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를 마치 친동생처럼 대해줬다.

장충동에서 저녁을 먹을 때 "한 프로 많이 드이소"라고 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고문은 골프를 아주 열심히 배웠고 열정적으로 즐겼다. 어떤 때는 1주일에 세 번 정도 안양에 올 때도 있었다.

이 고문은 결혼 후 클럽700, 오크밸리의 주인이 됐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골프대회 때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골프사랑이 대단한 분이다. 지금도 그 때의 부드러운 스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까.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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