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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폭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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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은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 "비류직하삼천척 의시은하낙구천(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이란 칠언절구를 남겼다. 물줄기가 삼천 자를 날듯이 떨어지니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듯하다는 뜻이다.

삼천 척이라면 900m가 넘는다. 이백이 살던 당대에는 한 자가 24.5㎝였다니 그렇게 하면 700m가 넘는다. 실제로는 100m가 조금 넘는 폭포지만 전혀 과장 같지가 않다. 개성의 박진사가 박연폭포에 취해 용녀에게 끌려 들어갔다는데 호방한 이백의 시심(詩心)이야 오죽했으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는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979m)다. 그야말로 삼천 척이다. 그래도 세계 3대 폭포라 하면 이과수.나이애가라.빅토리아를 꼽는다. 그중에도 이과수 폭포가 단연 장관이다. 폭 4㎞에 60~80m 높이의 폭포 257개가 걸려 있다. 햇빛의 각도가 바뀔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상적인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영화 '미션'(1986)의 첫 장면에서 한 신부가 십자가에 묶여 떨어진 바로 그 폭포다. 이과수는 과라니족 말로 '물'(이구)과 '크고 위대하다'(아수)가 합쳐진 것. 영화에서 신부인 로버트 드니로와 제러미 아이언스가 선교한 부족이 그 과라니족이다.

이과수 폭포는 1억5000만 년 전에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에는 강만 흐르고 있었다. 강가에 가이강게스라는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뱀 모양의 '음보이'신을 섬겼다. 부족은 가장 예쁜 여자를 음보이의 여인으로 바쳤는데 추장의 딸 나이피가 선택됐다. 그런데 나이피가 타로바라는 전사와 눈이 맞아 버렸다. 예식을 치르고 모두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두 사람은 카누를 타고 강으로 달아났다. 화가 난 음보이가 몸을 비틀며 포효하자 강이 갈라져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그래서 생긴 게 이과수 폭포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이 관광지에서 공기업.공공기관의 감사 21명이 '혁신 세미나'를 하려다 여론이 나빠지자 도중에 돌아왔다. 대통령 직속 균형발전위도 여기서 '지역 혁신 세미나'를 하려 했단다. 거기 가면 혁신 아이디어가 폭포처럼 쏟아질 거라고 생각한 걸까.

정경유착이 심각하던 5공 시절 한 정치인이 촌지를 뿌리며 "정치자금에 비하면 이건 폭포수의 물 한 방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금을 낭비하고 다닌 감사들도 그런 생각을 한 걸까. 면면을 보니 하나같이 대통령 선거 때 지방 조직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그 정도가 억대 연봉을 챙긴 걸 보면 진짜 공신들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