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교육행정/정재헌(평기자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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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교육행정은 꿈과 믿음이 담기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실행에 앞서 절차·결과가 교육적인 것인지,2세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심어주는 것인지가 검증되어야 한다. 행정의 경직성이나 편의성,감정의 전횡이나 구습에 집착하는 기성세대의 선입견 등이 배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진전없는 전교조문제
전교조 해직교사인 서울 단대부고 김경욱(35)·조성순(34) 두 교사의 복직을 놓고 구태여 특별감사를 벌이는 서울시교육청이나 교육부 등 교육당국의 과거지향적인 시각과 대응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교육행정이 얼마나 소아병적이고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발전을 계속해왔고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많이 성숙됐지만 당국의 전교조에 대한 시각만큼은 89년 대량해직의 칼을 빼들었던 당시 수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교사의 복직은 전교조로 활동하다 해직된 교사가 전 근무지로 발령받은 첫 케이스고 면직무효 확인소송 1심판결이 나기전에 학교측이 먼저 타협안을 제시해 소를 취하하고 서로 한걸음씩 양보해 얻어낸 결과란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극한 대립으로만 치달아왔던 당국과 전교조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교육부는 당초 두 교사가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면 복직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복직된 두교사중 한사람은 학교측의 요구에 따라 전교조 탈퇴각서를 제출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난마처럼 얽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이 보이던 전교조 갈등의 실타래가 해결의 매듭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기대도 있었다.
그 기대의 이면에는 1천5백여명의 전문직 「고급두뇌」들을 사장시키면서 우리사회의 「불만세력」으로 방치해 볼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더구나 일반국민들 사이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교조 문제는 차기정권으로 이월하지 말고 결자해지의 자세로 6공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이번 두 교사의 복직을 인정치 않고 어떻게든 재징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징계절차상의 하자로 법원에 면직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사립학교 해직교사가 31명이나 돼 이같은 선례가 생길 경우 다른 학교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단세포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복직싸고 학교에 압력
겉으로는 임용절차상 하자가 없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라지만 당국은 이번 일과 직접 관련이 없는 회계감사까지 벌이고 있다. 당국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정적인 조치를 동원해 압력을 가하면 학교측이 알아서 재징계를 하지 않겠느냐는 속셈으로 보여진다. 이는 『사립학교 교원의 임면권은 전적으로 재단에 있어 법적으로는 가타부타할 수 없으나 문제해결이 꼭 법으로만 되느냐』는 김득수서울시부교육감의 발언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같은 교육당국의 시각은 전교조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교육청 관계자는 김 교사가 써낸 전교조 탈퇴각서를 교육현장으로 되돌아가 학생들을 선동하려는 전술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일축했다.
김 교사는 전교조탈퇴각서를 제출한 뒤 『교단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다시 가르칠 수 있다는 기쁨에 탈퇴각서를 써야 하는데 주저나 망설임 따위는 잊어버렸다』고 했다. 김 교사는 해직기간동안 전교조 학생생활국장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온 이른바 「골수파」다.
우리는 김 교사의 토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전교조활동을 계속해온 교사가 하루아침에 탈퇴각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열정」이 각서를 써야 하는 인간적 비애감이나 고통보다 앞선다면 김 교사의 열정은 순수하다고 봐야 한다.
○정부도 명분세울 기회
그런 점에서 두 교사의 복직에 더이상 교육당국은 시시콜콜 시비하지 말고 지켜보는 아량을 보여야 하는게 옳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이번 사례는 전교조문제를 풀어가야할 정부에 명분을 세울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전교조문제는 우리사회가 민주화과정에서 떠안게된 「시대의 아픔」중 하나다. 이 아픔을 끌어안고서는 진정한 국민화합도,사회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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