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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에 섞어 화염방사기로 뿌려|가끔 물집생겼으나 땀띠로 여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귀국후 곧 제대한 김씨는 건축공사장을 다니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러나 찬물에 손발이 닿으면 살갗이 벌개지면서 저려 눈비가 오는 날은 외출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3,4년이 지나자 몸의 반점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후유증이 김씨의 전신을 덮쳤다..『수시로 혈압이 오르고 호흡이 곤란해지곤 했어요. 팔다리가 자꾸 마비됐고 이유없이 피를 토하기도 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한 10년전까지는 공사판을 억지로 다녔지만 길을가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행인들이 내 얼굴에 물을 붓고 뺨을 때려 여러번 깨워주기도 했었습니다. 무릎이 부어올라 병원에서 주사기로물을 빼내기도 했고요. 병원마다 정확한 원인은 말하지 못하면서 결핵이다,간염이다,식도염이다, 정맥류 (정맥류) 다등 증세에 따라 온갖 진단을내리더군요.』
현재 몸무게 45kg의 김씨는 아무일도 하지 못하고 방안에서 누워지내고 있다. 결핵약·간장약·위장약·기침약등을 매일 한꺼번에 복용하면서.
더 무서운 일은 후유증이 세아들에게도 닥쳐온 것. 김씨는 『아들들 때문에 나는 아프다는 소리조차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체중10kg이상 빠져>
『68년 6월 결혼해 이듬해 첫아들 ( 현재 25세) 을 보았습니다. 나면서부터 탈장이었어요. 6년간 치료끝에 나아 한숨 돌렸지요. 그런데 3년전 그애가 잠자던도중 전신마비 증세를 일으켰어요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도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척추뼈가 수축·이탈됐다는 진단에 따라 수술을한번 했습니다. 지금 하반신마비로 부산의 재활원에서 휠체어에 의지해 요양하고 있어요. 둘째(24)는 그보다 덜하지만 4년전부터 까닭없이 양쪽 사타구니와 엉덩이에 직경 10cm 가량의 반점이 생겨 매우 가려워하는데 듣는 약이 없습니다. 몸이 점점 말라 가고요. 고3생인 셋째는 무릎의 물렁뼈에 이상이 생겼다 해서 작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같은 맹호무대 1연대 2대대 5중대 소속이던 김길식씨(47·충북청원군거주)는 67년8월 월남에 갔다. 산악작전때 헬기에서 뿌려진 고엽제 세례를 심심치 않게 받았다. 귀국해서는 생계잇기에 바빠 「모기약」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79년께부터 양다리가 점차 쑤셔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집에서 푹 쉬라는 권유만 했다. 2년뒤 갑자기 온몸이 붓기 시작했다. 진찰결과 신장염이라고 했다.
이즈음 몸 곳곳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고, 한여름에도 추위에 떠는 일이 잦아졌다..
『89년에는 하도 다리가 아파 또 병원에 찾아갔지요. 두 다리가 썩어들고 있다는 거예요. 우선 한쪽 다리를 수술, 인공뼈를 넣었습니다.. 왼족을 마저 수술하려할 즈음 내 어깨와 등, 오금의 살이 꼭 빵모양으로 부풀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의사가 놀라 수술을 포기하더군요.. 당시 고염제후유증은 알지도 못했고 다만 왜 한꺼번에 여러가지 병마가 나를 찾아오나 하는 원망뿐이었지요. 양다리는 전혀 못쓰게 됐어요.

<상이군인 인정안돼>
작년5월부터는 다리에 젖소같이 반점들이 크게 생기면서 악취·진물과 함께 썩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모든 걸 다 포기했습니다. 고엽제환자로 소문이 나니까 군보건소에서 수시로 다리를 소독해 주고 있어요. 딸 (17) 이 상급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내 수발을 들어주고…」
한국해외참전전우회(회장 박세직민자당의원) 측은 고엽제피해자들의 신고내용을 근거로1백8명이 이미 후유증으로 숨쳤으며, 비관자살한 사람도 12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신체마비 2백34명▲각종 암환자 2백19명▲호흡질환 1백37명▲피부병 1백83명▲기형아츨산 1백6명▲정신질환 1백15명등 끔찍한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대한파월유공전우회(회장 황문길·48)에서 일하고 있는 황명호씨(54)는 65년4월부터 무려 3년2개월동안 월남전장에있었다. 그는 무공훈장을 다섯개나 탔다. 황씨도 지난 80년부터 손발과 가슴에 반점이 나고 몹시 가려운 증세가 시작됐다. 다른 고엽제환자들은 전혀 나라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상이군인 (4급) 으로 등록돼있다. 물론 고업제때문이 아니다. 68년6월 전투중 집중사격을 받아 머리·척추·다리·배등에「당장 눈에 보이는 중상」 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자녀들까지 증상>
『그 노란색 가루를 경유에 타서 화염방사기로 부대주변 숲에 뿌렸지요. 주로 새벽이나 저녁에 뿌렸는데, 아침이 되면 나뭇잎들이 벌겋게 죽어 오그라들어 있었어요. 만 하루가 지나면 잎들이 다 떨어졌고요.
그 많던 모기들이 싹 사라지길래 참 좋은 모기약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일부동료들은 피부에 물집이 생기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의무대에서 미제연고를 타다 바르면 곧 사라졌어요. 우리는 땀띠가 났던걸로 착각했었습니다.』
황씨는 소년체전에 도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건강하던 자신의 아들이 국민학교 3학년이던 지난 80년4월 달리기 연습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전신마비·실명증세로 고생하다 1년만에 숨진것도 고엽제 때문이었을 것으로 믿고있다.
『월남파병 당시는 몰랐다 치더라도 미국이나 호주에서 이문제가 크게 터졌던 7O년대말부터 최근까지 우리만 쉬쉬하고 있었던 건 집권자들이 「모른체 하는게 약」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병력을 월남에 보낸 우리를 외면한 미국측도 야속하고…. 결국 원인도 모르면서 2O년이상을 앓아온 환자들만 불쌍한 거지요.』
파월유공전우회측이 최근 전공상 인정절차를 밞기위해 일부 피해환자들의 월남근무기록을 육군본부에 조회한 결과 1백27명중 47명은 어이없게도 「자료미보존으로 확인불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화랑무공훈장을 받은이도 파월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해군측은 또 조회의뢰를 한 해군츨신 13명중 3명이 「파월경력 불명」 이라고 통보해 왔다.
기본적 자료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우리의 월남전. 그나마 고엽제환자들은 신체적휴유증이 2O년이상 끈질기게 지속된 덕분(?)에 최근들어 사회문제로 떠오를수 있었으니 끔찍한 역설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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