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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입성 나상욱은] 기본기 탄탄…美아마 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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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남저(女高男低)' 현상이 심각한 한국 프로골프에 새로운 '남성(男星)'이 떠올랐다. 지난 9일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퀄리파잉테스트를 통과해 내년부터 최경주(33.슈페리어)와 함께 미국 무대를 누빌 올해 20세의 재미동포 나상욱(미국명 케빈 나.코오롱)이다. 17일 오후 고국 땅을 밟은 그는 나이 어리고, 체격 당당하고, 성격 좋고, 미국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특히 대성이 기대된다. 나상욱, 그는 누구인가.

미국으로 이민간 다음해인 1992년 어느날. 아홉살 난 나상욱은 골프광인 아버지 나용훈(50)씨와 LA 집에서 TV로 골프 중계를 보다가 뜬금없이 "아빠, 골프선수가 되면 TV에 나올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물론이지"라는 아버지의 대답에 나상욱은 골프를 배우겠다고 졸라댔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골프였지만 어린 나상욱은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고, 먼저 시작한 형 상현(23)을 이내 앞질렀다.

15세가 되던 해 나상욱은 골프를 진짜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욕심에 현재 타이거 우즈의 스승으로 있는 유명 코치 부치 하먼을 찾았다. 그러나 하먼의 반응은 냉담했다. "예약이 밀려 있어 1년 후에나 레슨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상욱은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테니 꼭 레슨을 해 달라"고 답했다. 정확히 11개월 후 하먼 측에서 "아직도 내게 레슨을 받고 싶으냐"고 연락을 해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부치 하먼 골프스쿨을 찾았을 때 하먼은 대뜸 "낮게 깔려 왼쪽으로 휘는 샷을 해보라" "높이 띄워 오른쪽으로 휘도록 쳐보라"며 테스트를 했다. 나상욱의 샷을 한참 지켜보던 하먼은 돌아서면서 보조코치에게 "케빈이 원하는 시간을 내주라"고 말했다.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먼의 레슨을 받으면서부터 나상욱의 골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골든스테이트 투어.LA 시티 챔피언십 등 13개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아마추어 강자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01년 프로로 전향한 나상욱은 그때부터 고행길에 접어들었다. 투어 출전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뛸 수 있는 대회를 찾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부터 한국.일본.아시아.유럽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나상욱은 2001, 2002년 PGA 퀄리파잉테스트에서 거푸 낙방했다. 지난해 테스트 때는 꼭 될 줄 알았지만 태풍이 몰아친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할 겨를도 없이 '어, 어…'하다가 탈락했다. 그는 "처음 떨어졌을 때는 PGA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골프가 실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회상한다.

세번째 도전 끝에 꿈을 이룬 그는 "PGA 투어 카드를 받고 나니까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우선 하먼 스쿨에 갔을 때 드라이빙 레인지의 볼이 달라져 있었다. 미국의 볼 제조사들은 PGA 투어 프로에게는 연습장에서도 새 볼을 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또 하먼에게서 "네가 자랑스럽다"는 축하 인사와 함께 "내년 시즌에는 몇개 대회를 직접 참관하겠다"는 말도 들었다.

나상욱은 내년 PGA 투어에서 뛰는 가장 어린 선수다. 그러나 거침없는 말솜씨와 듬직한 체격에서는 믿음이 배어 나온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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