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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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치훈 9단과 숙적 고바야시(소림광일) 9단이 맞부닥친 본인방전 타이틀매치(7번기)가 일본 바둑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본인방은 조치훈 9단의 유일한 타이틀. 여기에 일본의 기성이자 명인인 고바야시가 지난 5월 도전하더니 내리 3연승해 조9단의 방어는 절망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둔다』는 조9단의 투혼이 되살아나면서 곧장 3대 3까지 추격해 들어갔다.
그 최종결승전은 오는 22∼23일 양일간 열린다.
기성·명인·본인방은 일본의 3대기전이며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의 일본 3대 신문사가 7억∼10억원의 대규모 상금을 내걸고 주최하는 독보적인 대회들이다. 이 3개 대회를 휩쓸면 일본에선 「천하통일」로 인정해 준다.
지금까지 이 위업을 달성한 사람은 85년의 조치훈 한사람 뿐이다. 그는 당시 후지사와(등택수행) 기성에게 도전해 「3패후 4연승」의 신화를 남기며 극적으로 3대 타이틀을 휩쓸었다.
그러나 조9단은 86년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한 휠체어 대국을 벌였으나 고바야시에게 패해 기성을 빼앗겼고 이후 고바야시의 시대가 시작됐다.
최근 3년간 조9단의 마지막 타이틀인 본인방에 대한 고바야시의 공략은 집요했다.
90년엔 도전자 고바야시가 3대 1 까지 앞섰다가 조치훈이 막판에 3연승해 4승3패로 조9단의 승리. 91년에도 고바야시가 2대 0으로 앞섰다가 조9단이 4연승해 4대 2 로 승리.
『고바야시는 바둑은 강하나 심장이 약해 단판승부나 승부판에 약하다. 그가 일본의 일인자이면서 세계대회에서 참패를 거듭하는 것도 심장이 약한 탓이다.』
일본 바둑계의 평가였다.
그에게 올해 다시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처음 고바야시가 3연승 했을 때 이번엔 틀림없다며 두번째의 천하통일을 언급하던 일본 바둑계는 조9단이 다시 3대 3까지 추격해오자 조치훈이야말로 명승부의 연출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치훈(36)과 고바야시(40)는 기타니(목곡실) 문하생시절부터 라이벌이었다. 조가 한발 앞서 신인상·일본 최고기사상을 휩쓸면 바로 그다음은 언제나 고바야시였다. 기질적으로도 소박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조치훈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고바야시의 완벽주의를 싫어한다. 겸손한 조치훈 9단이지만 사석에서 『고바야시 따위는 문제없다』고 호언한다.
조치훈과 친한 다케미야(식궁정수) 9단은 고바야시를 놓고 『냄새나는 지하철바둑』이라며 공공연히 혐오감을 드러낸다.
휠체어 대국의 패배를 잊지 못하는 조치훈과 고바야시의 본인방전 최종국은 이런 감정까지 겹쳐 더욱 뼈저린 한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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