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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19. 이병철 회장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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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양컨트리클럽 전경. [중앙포토]

이병철 회장과의 라운드가 거듭되던 어느 날.

라운드를 마친 뒤 이 회장이 "우리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며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서울 중구 장충동 100번지. 지금까지 주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말로만 듣던 장충동 집을 두리번거리며 들어갔더니 안방에 큰 자개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 회장과 나, 두 사람만의 겸상이었다. 몸둘 바를 몰랐다. 국내 최대 기업의 오너와 겸상을 받다니. 이 회장은 3남3녀를 두었는데,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자녀들이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아버지의 식사 시중을 드는 것이었다. 이 회장의 엄격한 가정교육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리자 이 회장은 경상도 억양으로 "니는 내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권유했다.

회장 댁에 초대돼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가 잦아지면서 그분과의 친밀감도 깊어졌다.

어느 날 이 회장이 내게 "나는 네 골프가 마음에 들어서 아들같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당시 삼성은 안양컨트리클럽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같이 생각한다'면서 왜 내게는 골프장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장 댁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차를 마시던 이 회장이 갑자기 "니 얘기 들어서 알고 있제?"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안양에 와 있으면 안되겠나?"라고 했다.

당시 나는 서울컨트리클럽 소속 프로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지금 답을 못드리겠습니다. 싫은 게 아니라 의리상 서울컨트리클럽에서 잔뼈가 굵은 제가 갑자기 간다는 말을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연덕춘 선생님과 상의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이 회장은 "그래 니 맘 편하게 해라"고 했다. 안양으로 옮기면 국내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나는 서울CC로 출근해 이순용 이사장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1966년 안양CC가 가개장(정식 개장은 68년)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오늘날 한국 최고 수준의 골프장 중 하나인 안양컨트리클럽의 초대 전속 프로가 된 것이다.

이 회장은 내게 부장급 월급을 주면서 프로숍.연습장 운영권까지 맡겼다. 또 해외 대회 참가 땐 출장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라운드도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프로숍 운영에 보람을 느꼈다. 프로숍이 무엇인가. 그야말로 프로가 운영하는 가게다. 전문가인 프로가 클럽이나 용품을 구비해 놓고 손님에게 맞는 것을 파는 곳이 진정한 프로숍이다. 그런 점에서 안양CC는 처음부터 최고를 지향했다. 요즘 대부분 골프장의 프로숍은 '아마추어숍'이다. 한장상의 골프가 봄날을 맞은 시절이었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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