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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자산 총량제'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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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산업화 시대의 도시 경쟁력은 경제활동에서 생성됐으나 서비스산업 시대에는 친환경성과 역사문화성이 선도한다. 과거에는 보전이 경제적 손실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오는 시대가 됐다. 이는 역사문화 자산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로마는 관광수입으로 먹고산다.

우리나라의 역사문화 보전은 개별 문화재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래서 문화재는 보존할 수 있었지만, 문화재 주변 지역은 고층 아파트 등으로 채워져 보존 효과가 크게 반감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2004년'고도(古都) 보존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경주.공주.부여.익산을 고도로 지정해 계획적인 보전 및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

고도는 옛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문화적 고유성과 역사성을 공간 집약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궁궐.사찰 등 문화재만 아니라 산.하천.가로망과 문화재 배경이 되는 농경지.시가지, 그리고 고도의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과 설화적 장소 등을 포괄해 역사적 경관 네트워크를 형성시켜야 한다. 이 사업은 문화재 보호구역보다 훨씬 넓은 지역 주민의 불편과 재산 손실을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고도지역 주민들은 고도 보존법 철폐를 주장한다.

고도 보존은 보존지역 주민의 희생만으론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텔레비전 시청료의 10%를 고도 보존기금으로 조성하고 있다. 고도나 문화재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지가를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물처럼 취급되지 않기 위해선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한 고도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이 고도 보전을 분담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상수원 보호구역 주민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물 이용 부담금과 같이 고도 및 역사문화자산 보전 지역과 개발 지역의 불형평성을 시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역사문화자산 보전 면적이 적은 시.군에서 개발하면 보전 면적이 많은 시.군에서 보전 면적을 매입하는 '역사문화자산 총량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그러면 지방자치단체에선 역사문화자산 보전 면적을 늘리기 위해 문화 자산 보전에 적극 나서고, 주민도 역사문화자산을 지키는 데 자긍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도 보존 사업은 국민 모두의 관심과 경제적 지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

채미옥 국토연구원 토지주택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