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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대선자금 고해성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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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18일 오전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18일 “최근의 국가적 혼란을 풀어가야 할 분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라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추기경은 이날 신임 인사차 방문한 민주당 조순형(趙舜衡)대표 일행에게 이같이 말하고 “이래서야 나라가 잘 되겠느냐는 얘기를 어디를 가더라도 많이 듣고 있다”고 강조했다.

金추기경은 특히 趙대표 일행과 함께 기도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폭풍우 속에서 흔들리는 배와 같습니다”며 “이러한 시기에 배가 파손되지 않도록 배를 몰고가는 조타수와 선장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고,어느 길이 국민이 바라는 길인지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金추기경은 趙대표와의 대화에서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이제 불법 대선자금 문제는 모두 털고,청산하고 가야 한다”며 “해당되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처럼 진지하고 진실된 고해성사를 해야 하고,필요하면 감옥에 갈 각오도 하면서 진정 맑고 밝은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은 천주교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시기”라며 “모든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金추기경은 특히 盧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관련,“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늘 비판만 하는 걸로 이해하는 반면,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들 e-메일 등으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니까 이들과 함께 하면 뭔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趙대표도 이에 대해 “대통령 후보라면 모를까,일단 대통령이 됐으면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아니라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줬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金추기경은 “지난 번 청와대에 갔을 때 마침 盧대통령이 언론사와 소송을 하고 있어서 ‘언론에 대해 그렇게 하지 말고 껴안으라’고 충고했더니 ‘껴안는 것은 강자가 하는 것이고,저는 약자다’고 말해 盧대통령을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열흘쯤 뒤에 소송을 중지하길래 ‘그래도 우리 말을 따라줬구나’싶었다”는 일화도 소개하며 盧대통령이 주변의 고언에 귀기울여주길 기대했다.

박신홍 기자

다음은 金추기경과 趙대표의 대화 내용.

-조순형:안녕하십니까.

-추기경: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김상현:(앉으며)제가 김윤환 대표가 죽기 전에 함세웅 신부를 모시고 가서 영세를 받게 해드렸습니다(따로 보고).

-추기경:많이 바쁘실텐데.

-조순형:여러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갑자기 당 대표가 돼서...

-추기경:너무 겸손한 말씀이십니다.과찬이 아니고,대표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바라보는 큰 희망입니다.

-조순형:과찬이십니다.저의 지역 혜화(?)학교 증축 때 추기경님이 오셨습니다.그 때 뵈었죠.

-추기경:이제 늙었다고 초청도 안합니다(모두들 웃음).

-김상현:趙대표의 형님하고 70년대 감옥에 같이 있었는데,수도원의 땅을 대표 어머님이 기증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순형:어,그래요.저는 어려서 잘 모르겠는데,어머님도 가톨릭 신자셨습니다.

-추기경:땅이 굉장히 큰데,몇만평 되는데요..한번 확인해 봐야겠습니다.너무 일이 많아서 힘드시겠습니다.

-조순형:민주당이 분당되고 대통령이 탈당하고,그래서 하루아침에 여당에서 야당이 돼버렸습니다.가까스로 수습해 전당대회도 잘 치렀고요.DJ도 얼마 전 칭찬하고 그런대로 수습이 됐습니다.

-추기경:추미애 의원도 경선했는데 잘 협조를 하시대요.

-추미애:그럼요,그래야죠.

-조순형:4당 대표회담이 며칠 전에 있었습니다.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는데,저는 국정이 아주 참 어지럽고 잘못됐다고 봐서요,경제도 어렵고 민생이 안정이 안돼 국정 전반에 걸쳐 얘기하자고 했는데,아,대화 중에 대선자금과 관련해 승자인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가 실상이 낱낱이 밝히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사법처리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고,여론도 다 그렇잖습니까,그리고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추기경:요새 많이들 할 때입니다(모두들 웃음).

-조순형:그런데 노대통령이 답변하기를 동서고금에 진실한 고백성사는 없었다는 거예요.그러면서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서 밝히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고해성사는 가톨릭 신자들이 죄를 고백하는 성스러운 것인데,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데,추기경님,진짜 그렇습니까? 진실된 고해성사가 없었습니까?

-추기경:이 주에 많이들 하실 겁니다(연말에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는 주가 있다고 함).고해성사는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진심으로 뉘우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그 표현이 정계나 언론에서 많이들 쓰고 있는데,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는 요즘 너무 혼란스럽고,특별히 국가적 혼란을 풀어가야 할 분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더 어렵게 하고 있지 않나 싶어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나라가 되겠느냐는 얘기를 어디 가서도 많이 듣게 됩니다.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이제 이 문제는 털고,청산하고 가야 합니다.해당되는 분들은 진지한 고해성사를 하나님 앞에 말씀드리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감옥 갈 각오도 하고 나라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그런 맑은 정치풍토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여러분이 있겠지만 趙대표도 그 중 한분이 아닌가,대표가 되셔서 기대하고 있습니다.정치하는 분들이 아무쪼록 잘해주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순형:추기경님도 盧대통령을 만나면 얘기 좀 해주십시오.청와대에도 몇차례 가셨죠.

-추기경:두번쯤 갔던 것 같습니다.

-조순형:그 떄는 대선자금 문제는 안나왔을 때죠.

-추기경:그 때는 안나왔을 때죠.조중동,그리고 한국일보와,언론하고 싸우고 있을 때,소송을 걸고 있을 때였죠.그 뒤 재신임을 받겠다고 할 때는 고건 총리가 저뿐 아니라 여러분들을 초청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좀 전에 동아일보와 인터뷰할 때 사람들이 불안해 한다는 말을 별로 힘줘서 말한 게 아니었는데 크게 타이틀로 뽑아버렸습니다.그래서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대통령 마음이 괴로워하는 데 내가 원인제공을 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그래서 앞으로는 말을 삼가야겠다 싶더군요.

-조순형:(목소리를 높이며)아닙니다.더 하셔야 합니다.저희도 나름대로는 하고 있습니다만.

-추기경:그 때 언론에 대해 그렇게 하지 말라,껴안으라고 하니까 강자가 그럴 수 있는 것이지 나는 약자라고 하더군요.그래서 저는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순형:오만한 자세죠.예,잘 하겠습니다,그렇게 답이 나와야지 갑자기 약자라니 참...

-추기경:당시 다른 분들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열흘 뒤엔가 소송을 중지시켰어요.그래서 아,당시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후에는 따라줬구나 싶었습니다.

-조순형:노대통령이 최근엔 추기경님을 잘 모시려 하지 않는 게...4당 대표회담 때도 제가 그랬습니다.혹 떼려다 오히려 혹 붙이고 왔다고요.괜히 10분의1 발언만 해서 정쟁의 불씨가 되고,참 안타깝습니다.

-추기경:이 고비를,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조순형:盧대통령을 찍어달라고 해서 당선시켰기 때문에 우리도 책임이 있습니다.제가 대표 회동에서 심지어 이런 말도 했습니다.대통령이 언행에 조심하라고요,우리가 그냥 비난하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추기경:盧대통령은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늘 비판만 하는 걸로 이해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그리고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들 e-메일 등으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그러니까 확실히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들과 함께 하면 뭔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상현:그게 소위 코드가 맞는다는 겁니다.

-추기경:(盧대통령이)나름의 철학이 있어요.

-조순형:후보라면 모를까 대통령이 되면 화합과 통합을 해야지,링컨을 가장 존경한다면서,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후 화합의 리더십을 펼치지 않았습니까.그런데 인사도 그 범위 내에서만 이뤄지고 있고요...

-김상현:남북전쟁 때 남부 대통령은 2년밖에 안살고 나왔고요(?),안에 있을 때 글고 맘대로 쓰게 해주고 그랬습니다.장병은 다 사면해줬고요.

-조순형:분열과 갈등의 리더십이 아니라 통합의 리더십이 돼야 할텐데...

-추기경:아무쪼록 趙대표께서 가능토록 하는 게 대통령을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상현:추기경님이 대표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좀 해주십시오.

(모두들 기도)

-추기경:자비로운 하느님,오늘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주님이 잘 아시는 바대로 우리나라 정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흔들거리는 폭풍우 속의 배와 같습니다.아무쪼록 이 시기에 이 배가 파손되지 않도록 배를 몰고 가는 조타수와 선장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고 어느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고 국민이 바라는 길인지,겸손히 주님께 맡기고,주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게 하소서.은혜를 베풀어 주소서.아멘.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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