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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사회 꿈꾸는 유쾌한 에트랑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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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08면

사진 신인섭 기자

1. ‘테제베’ 같았던 일과 사랑

장정일이 만난 작가-이다 도시

지난 한 해 동안 이다 도시(38ㆍIda Daussy)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씨름했다. 이미 한국에서 여섯 권의 책을 내어 본 그녀지만, 지난해에 쓴 책은 각별했다. 기왕에 낸 책들이 육아나 요리와 같은 프랑스식 ‘라이프 스타일’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프랑스 독자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거였다. 한 나라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은 행복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달에 번역되었으나, 2006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한국, 수다로 풀다』(이미지박스)가 바로 그 책이다.

그녀는 한국인의 특성과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빨리, 빨리 늘 더 빨리’라고 파악한다. 1년 전에 이사한 동네를 찾아가 봤더니, 풍경도 건물도 사람도 깡그리 없어지거나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척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한국에서 지낸 15년은 바로 그녀의 결혼생활 기간과 거의 같으며, 방송 경력과 맞먹는다. 다시 말해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사랑과 일’을 일순간에 성취한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거의 ‘테제베’의 속도가 아닌가?

“1992년 1월에 한국에 와서 2월에 남편 될 사람을 만났어요. 독일 여자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갔다가, 옆에서 일본인 바이어를 접대하는 창수씨와 우연히 합석하게 됐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일주일 후부터 ‘작업’이 들어왔어요. 스물두 살 때 만나, 1년간 사귀다 결혼했으니 프랑스 기준으로는 너무 빠른 게 맞죠. 나보다 21개월 어린 내 여동생이 지난달 결혼을 했는데, 10년 동거 중 아이 하나 낳고, 집도 샀어요. 서양에서는 보통 있는 일이죠. 그런 방식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해요. 게다가 남편은 그때 서른 살이었고, 시어머니로부터 결혼 압력을 받고 있었어요.”

2. 롤러코스터 같은 성공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국제결혼 비율은 11.6%다. 나라 전체로 보면 열 쌍 가운데 한 쌍이, 농촌의 경우는 네 쌍 가운데 한 쌍이 국제결혼이다. 하지만 당시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 들은 독일 여자 친구는, 바보가 아니냐며 당장 헤어지라고 말렸다. 한국에서 결혼하면 독립적인 생활이나 자유랑은 ‘바이 바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친구들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특히 결혼 비용만 대략 4000만원이 필요하고 전세 비용이 1억원이나 든다는 딸의 말을 듣고는, 한국에 가서 이단의 손아귀에 넘어간 것이 틀림없다고 부모는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를 ‘테제베’에 태운 것은 사랑이었고, 다음엔 롤러코스터와 같은 아찔한 성공이 이어졌다.

뭇 시청자들에게 수더분하고 수다스러운 ‘캐릭터’로 각인된 이다 도시의 방송 활동은 그녀가 한국에 도착한 당년부터 시작된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일하던 중에 EBS의 ‘봉주르 라 프랑스’에 고정 출연하게 된 것이다. 한국이 도전의 땅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진도가 좀 빠른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배우며 매주 4회분의 녹화를 해야 했던 바쁜 생활은, 93년 2월 결혼을 한 뒤에도 계속됐다.

“EBS에서 프랑스 회화를 3년 가르쳤던 게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95년 KBS ‘아침마당’에 국제결혼을 한 부부로 출연했다가 큰 인기를 얻었죠.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때는 한국말 굉장히 어색했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실수도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는 ‘이거 오래 안 가니까 즐기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97년부터는 매니저와 함께 일해야 할 정도로 바쁜 방송인이 되었어요.”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성공의 비결을 본인은 이렇게 분석한다. 첫째, 자신이 한국에 온 상황이 절묘했다. 이전에는 먹고사느라 한국인이 너무 바빴고, 이후에는 점점 더 해외여행을 많이 하게 되면서 외국인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질 못했다. 둘째,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친근감을 주었으며, 그녀 또한 한국을 관찰하는 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셋째, 자신이 백인이고 프랑스인이라는 사실도 중요했다. 많은 나라에서 그런 것처럼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녀가 유색인종이거나 선진국 출신이 아니었다면 주목을 받기 힘들었을 거란 말이다. 마지막으로 젊고, 그럭저럭 귀엽고, 수다스럽고, 호기심 많은 자신의 성격과 외모.

3. 악바리 근성과 일중독

이것이 그녀가 실토한 성공 비결이지만, 열거된 행운에 두 가지 사항을 더 보태고 싶다. 먼저 출산과 육아를 하는 도중에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은 그녀의 ‘악바리 근성’이다. 일중독(workaholic)과 ‘빨리, 빨리 늘 더 빨리’라는 한국 문화에 동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이제 조용히 오래 있으면 불안하다고 느끼며 유럽은 느리고 답답하단다. 부기해야 할 다음 사항은, 환대(歡待)의 이면에 도사린 한국인의 콤플렉스. 이다 도시는 ‘이제 우리나라도 서양인이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어 할 만큼 괜찮은 나라가 됐다’는 식의 민족적 자긍심(?)을 높여주는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그 자긍심이 우리만의 자위일 수 있다는 것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의 반응이 신통찮다는 데에서 찾아진다. 월드컵 덕분에 조금 알려지긴 했으나 유럽에서 한국은 일본ㆍ중국만큼 유명하지도 않고, 솔직히 가고 싶은 나라도 아니란다.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유럽에 각인된 한국의 모습은 화염병과 무장한 전경이 대치한 도심, 성수대교(1994년)와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 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의 황우석 파동 같은 부정적 이미지다. 그런데도 그녀는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90년부터 일찌감치 ‘코리안 드림’을 꿈꿨다.

“대학에서 경영학 학사를 마치고 나서, 대학원 석사 과정은 ‘아시아 비즈니스’를 택했어요. 왜 아시아였느냐 하면,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취업난이 심각했었는데 단순히 멀리 가면 일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죠. 세부 전공으로 중국·일본·한국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나는 친구들이 택하는 중국이나 일본 대신 한국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한국은 그때 막 세계화를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이다 도시에게 한국은 ‘틈새시장’이거나 ‘블루 오션(Blue Ocean)’이었으니, 스물두 살 먹은 ‘리틀 걸’의 모험은 낭만이나 즉흥과는 거리가 먼 철두철미 ‘준비된 모험’이었다. 사진가이면서 전방위 작가인 존 버거는 『제7의 인간』(눈빛, 2004)을 통해 이민을 떠나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가장 젊고, 진취적이며,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좀 더 재미있게 살고, 도전하고 싶으며, 움직이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한국을 찾았다는 이다 도시는 그 정의에 딱 맞다.

4. “다인종 사회 다리 잇고파”

이 책보다 일주일 앞서 한국 생활 10년차라는 미국인 문화비평가 J 스콧 버거슨의 『대한민국 사용후기』(갤리온)도 나왔다. IMF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가 강습한 이래로 한국은 외국인에게 자신의 문제를 총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조회해볼 기회를 가졌고, 이제 와서 자신의 문제를 더 잘 알기 위해 외부의 시각을 참조하는 것은 집단적 기억상실증이자 어리광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다가올 다인종ㆍ다문화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현재 2% 정도인 외국인 거주자가 2050년엔 10%가 되고, 그런 사회를 가리켜 ‘이민 사회’라고 한다. 이다 도시와 J 스콧 버거슨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다르지만, 한국인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인종차별 문제에서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그녀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물어보았다.

“한국에 와서 여유를 많이 잃어버렸어요. 다시 그것을 찾고 싶어요. 방송인으로서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TV 토크쇼를 갖고 싶어요. ‘울랄라 아줌마’란 코믹 이미지는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그때의 한계였지 내 본 모습은 아니에요. 특히 여성 문제와 이민자 문제 같은 시사 문제를 다루고 싶어요. 그리고 내 큰 아이의 이름 유진(維辰)은 프랑스식으로 위젠(Eug<00E8>ne)이 되는데, 프랑스식 이름과 한국식 이름이 서로의 음차(音差)인 것처럼, 두 나라를 잇는 고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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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작가’란 줄임말로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ㆍ소설가ㆍ희곡작가ㆍ책평론가이자 독서광으로서 행복한 책읽기의 비밀을 파헤칩니다.

이다도시, 한국사회 비판 나선 ‘울랄라 아줌마’

“내가 배우 김혜수와 동갑인데요, 김혜수는 아가씨고 나는 아줌마예요.”
이다 도시(Ida Daussy, 한국명 서혜나)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집단적이고도 대표적인 편견 가운데 하나는 ‘아줌마는 남녀가 아닌 제3의 성(性)’이라는 점이다.
모델도 아닌 여성에게, 심지어 아줌마들에게조차 완벽한 몸매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그를 불편하게 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처음부터 ‘뚱뚱한 울랄라 아줌마’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울랄라’는 ‘아이고’ 또는 ‘어머나’라는 뜻의 프랑스어 감탄사.

“우리 아이들을 자꾸 ‘귀여운 프랑스 아이’라고 합니다.”

이민사회라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적 지체도 그에게 상처를 준다. 떡두꺼비 같은 그의 두 아들 역시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한국인. 하지만 2세조차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조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경제학ㆍ언어학ㆍ경영학을 공부하고 1996년 귀화했다. 앞으로 여성문제와 이주민 문제의 해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작정이다. 이번 책에서 수위 조절을 해가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감초처럼 넣은 이유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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