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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빅3 정상 '신자유 신성장'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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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에 따라 10년 가까이 유럽 대륙을 견인해 왔던 블레어-시라크-슈뢰더 시대는 끝나고 브라운(56)-사르코지(52)-메르켈(53) 라인업이 유럽은 물론 국제 정치무대의 주요한 축으로 등장하게 됐다. 블레어 총리는 1997~2007년 10년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95~2007년 12년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98~2005년 7년간 정상을 지냈다.

브라운-사르코지-메르켈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장 우선의 경제정책과 친미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50대 기수=유럽의 핵심 국가인 3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50대 초.중반으로 채워지게 됐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앞으로 국방.외교정책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도 관심사다.

신세대 3인의 지도자는 나이는 50대지만 정치적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브라운은 자신보다 두 살 어린 블레어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라이벌이기도 하다. 32세의 젊은 나이로 의회에 진출했으며 노동당이 야당이던 시절에는 예비내각 통상산업.재무 장관을 맡았다. 블레어와 함께 '뉴 레이버(신노동당)'를 건설한 쌍두마차로 내각에 들어와 재무장관만 10년 동안 역임했다.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89년 35세의 나이로 정치에 입문해 이듬해 독일 통일 뒤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헬무트 콜 정부에서 여성.환경장관을 지냈으며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다.

22세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사르코지 당선자는 28세 때 뇌이쉬르센 시장에 선출됐다. 이후 예산.내무.재무 장관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세 명의 지도자는 출신도 특이하다. 브라운은 영국 주류 정치가들을 배출한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 태생이며 사르코지는 헝가리계 이민 2세다. 메르켈은 서독에서 태어나 동독에서 자랐다.

◆ 분배보다 성장=메르켈과 사르코지는 보수 우파, 브라운은 좌파 정당 출신이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경제정책은 닮은 점이 더 많다. 3개국 모두 유럽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이지만 이들은 분배보다는 성장을 더 중요시한다.

브라운은 블레어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주도해 왔다. 노동당이 보수당의 18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97년 집권했을 때 통화정책 결정권을 영국 중앙은행에 맡기자고 블레어 총리에게 제안한 사람은 바로 브라운 장관이었다. 이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인 기조가 강화됐던 영국 경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최고 수준의 경제 성장을 거듭했으며 일자리는 늘어났다.

메르켈 총리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개혁을 본격화하면서 독일 경제는 급속히 되살아나고 있다. 1년 반 사이에 실업자는 100만 명가량이나 감소했으며 실업률도 한 자릿수(9.5%)로 떨어졌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무려 13.7%나 증가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자'는 구호로 대선에서 승리한 사르코지도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개혁을 추진할 방침이다. 사르코지는 선거전에서 ▶주 35시간 근무제의 노사 자율 결정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적 정책을 공약했다.

◆ 미국과 더 가까이=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주도한 이라크전쟁은 미국과 유럽 대륙을 갈등 관계로 몰아넣었다. 특히 시라크와 슈뢰더는 이에 강력하게 반발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강력한 유대를 과시했던 대서양동맹이 갈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그동안 사이가 나빴던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반면 미국과 밀착했던 영국은 오히려 약간의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을 달고 다니는 블레어의 인기가 추락하는 것을 지켜본 2인자 브라운으로서는 마냥 미국을 추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부시의 노선에 노골적으로 반대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당분간 뜨뜻미지근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운은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문제에 대해 "내각의 일원으로서 그동안의 결정에 책임을 느끼며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메르켈은 취임 후 벌써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함으로써 전임자인 슈뢰더 시절 틀어졌던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켜 놓았다. 사르코지는 유럽의 반미 선봉장이었던 전임자 시라크의 외교 노선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유럽 통합 문제에 대해 브라운은 소극적이다. 이는 전통적인 영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브라운은 파운드화의 유로화존 가입에도 반대해 왔다.

반면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교착 상태에 빠진 유럽연합(EU) 헌법을 어떻게든 되살려 보겠다는 생각이다. 통합 수준은 다소 낮추더라도 속도는 끌어올린다는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은 사르코지의 대통령 취임을 전후로 베를린에서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한경환 기자

◆ 신자유주의=시장의 기능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중시하는 경제 이론. 미국 시카고학파가 주창했다.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한다. 정부의 통화정책 개입 최소화와 규제 완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 보수 우파가 이를 적극 수용했다. 국가 권력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등을 옹호해 온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과 같은 좌파들도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제3의 길' '노이에 미테(신중도)'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가 간의 자유무역 확산으로 세계화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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