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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 손벌리는 곳 많아 몸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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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종 이익단체들 앞다퉈 초청/참석하면 거의 재정지원 요구/표의식해 찾아나서는 후보들에게도 문제
대통령후보들은 봉인가­.
여야 각당이 대통령후보를 결정하자마자 후보들의 비서실에는 각종 단체로부터 행사참석 초청장이 쇄도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노골적으로 행사비용 등을 요구해 후보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술단체에서부터 직능·지역·친목·종교단체에 이르기까지 이들 각 이익단체들은 회원수,또는 사회적 영향력 등을 앞세우며 은연중 「표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후보자들로선 외면할 수가 없고 억지춘향격으로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정치학회의 경우 3∼5일 경주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며 김영삼·김대중·정주영후보를 하루간격으로 초청,각 후보에게 식사모임을 주재토록 요청하고 비용까지 부담시켰다.
후보들은 표를 의식한 나머지 자신들이 직접 찾아나서는 경우도 적지않고 『힘있는 단체만 찾아다닌다』는 비판도 받고있다.
○…민자당의 김영삼대표가 6월29일 하룻동안 접수한 행사초청건만 해도 섬유노조 전국대회,경실련 출범 3주년 기념행사,정치학회 하계학술대회,대한미용사회 중앙회장 이·취임식,한국학술진흥재단 공청회 등 10여건에 이르며 6월중 가장 많은 신청이 접수된 경우 22건이나 됐다.
이중에는 순수하게 김 대표를 초청해 격려사나 듣겠다는 단체도 있지만 여당대통령후보의 위세를 등에 업고 단체를 선전하거나 특정 목적에 이용하려는 집단도 적지않다.
당장 득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김 대표로서는 어떤 단체의 요청도 딱잘라 거부하기 어렵다.
최근 있었던 한 여성단체의 간담회는 각당 후보를 연쇄적으로 불러 하는 행사라 참석을 거절하려 했으나 워낙 집요하게 참석을 요구한데다 이 단체가 나름대로 여성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이에 응했다.
이 단체는 은근히 재정지원을 요청했고 김 대표는 금일봉을 내놓아야 했다. 김대중후보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한국정치학회의 학술회의 경우 그들이 사회여론 형성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라 「평상정치론」의 원칙을 깨고 참석하게 된다.
김 대표는 따로 금일봉을 전달하진 않지만 2백명 가량 되는 회원들의 저녁을 사기로 했다. 이 비용만 4백만원이 나간다.
어떤 사회단체에서는 집행부 내부의 권력다툼을 호도하기 위해 한편이 김 대표를 초청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가 다른 편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재정적 지원이나 위세과시용으로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이용당하는 케이스다.
김 대표가 행사참석에 응하는 원칙으로 ▲당행사 ▲대표로서의 일반적 대외행사에 한정하고 후보자격으로서의 참석은 일체 불응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현실은 따로 노는 것이다.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최근 하루 평균 10건정도 각종 강연회와 전람회 등 모임 참석초대를 받는다.
이중 김 후보가 직접 참석하는 행사는 하루 한건 꼴이어서 불참하게되는 나머지 초대모임에는 축전·화환 등으로 때우기도 하고 대리인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지않고 초대에 불응하는 이유를 대는데 늘 고심한다고 측근들은 지적한다.
김 후보는 시간이 허락하고 학술단체 등 격에 문제가 없는 한 가급적 많은 강연 및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김 후보측은 그러나 일부 사회단체 등이 식사비와 리셉션비용부담 등 금전적 지원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적지않아 이를 거절하느라 애를 먹는다. 서울의 모대학측도 이같은 제의를 해와 좋은 말로 따돌리기조차 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학회 초청강연회는 김 후보로서는 거금인 5백만원을 점심초대비 등 명목으로 지원했다. 김 후보는 지난달 11일 이 학회 회장단과 조찬을 함께하며 격려금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는 강연회외에도 연극인이나,작가 등과의 모임도 갖는데 격려금으로 1백만원 정도를 건네고 있다.
김 후보는 2일 서울 신길1동에서 환경미화원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역시 1백만원의 격려금을 지원했다.
김 후보측은 정책대결,비전을 제시하는 관점에서 대통령후보들이 권위있는 단체 주최의 토론회 등에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후보들에게 비용부담을 요구하는 각종 단체들의 행태를 개탄하고 있다.
○…정주영국민당대표 비서실에는 보통 하루평균 4∼5건의 초청장이 날아온다.
국제문화연구소 세미나에서부터 전남 함평의 불교평신도모임,서울구치소 관세음보살입석상봉안식,안모교수 장남 결혼식,모화장품회사 주최 배드민턴대회 등 7월초에 열리는 각종 모임이다.
통상 한달평균 1백여건의 요청이 들어오면 80여건이 대표의 결재대상에 오르고,그중 약 20% 정도가 참석대상으로 결정된다.
정 대표로서는 짧은 방문에 성의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점잖은 교수들의 모임인 학회에서도 『기금마련을 가장 많이 하는 분이 유능한 회장』으로 알려진 마당에 각종 자선모임 등에 미성을 표시하지 않다간 원망듣기 십상이다. 문제의 한국정치학회 모임에는 학회의 요청을 받아 현대를 스폰서로 소개,거금을 댔다.
재벌이지만 정 대표의 씀씀이는 「여당대표」 수준으로 조정된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수원의 양로원을 방문했을때 즉석에서 매월 연료비(4백만원)를 약속했듯 마음에 내키면 즉석선물도 주저하지 않는다.<박병석·전영기·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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