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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15. 박정희 전 대통령(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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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1년 한국을 방문한 애그뉴(左) 미 부통령과 태릉컨트리클럽에서 라운드하기 전에 연습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난 것은 1967년 안양컨트리클럽에서였다.

나는 서울컨트리클럽을 떠나 안양CC에서 헤드프로로 일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병철 삼성 회장과 라운드를 하기 위해 그곳에 오셨다.

클럽하우스 2층에 있는 회장실에서 연락이 왔다. 두 분이 담소하고 있다는 방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안 보였다. 그 방에 있던 가죽소파에 가려져 키가 작은 두 분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한동안 당황하고 있는데 "각하께 인사드려라"하는 이 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 둘러보니 두 분이 소파에 앉아 계셨다.

앞으로 다가가 "안녕하셨습니까"라고 정식으로 인사를 했더니 박 대통령께서 "한 코치 오래간 만이야. 인연이 깊으니 또 만나는구먼"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는 그 뒤로 박 대통령과 여러 차례 라운드를 했다.

60년대 중반에 보기 플레이어였던 박 대통령의 골프 스타일은 '또박 또박' 골프였다. 필드에서는 클럽을 어깨에 메고 걸었다. 마치 총을 멘 것 같았다. 박 대통령에게서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늘집에서 다른 팀을 만나면 아주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다. 앞팀에서 "먼저 가시라"고 양보해도 "아닙니다. 먼저 가십시요"라며 사양했다. 앞팀과 뒷팀을 텅텅 비어 놓는 이른바 '대통령 골프'라는 표현이 그 시절엔 없었다. 그만큼 박 대통령은 소박했다.

박 대통령의 골프를 생각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린 위에서 짧은 거리는 항상 '1퍼트 OK'였다. 언젠가 박 대통령께서 "골프는 다 좋은데 말이야 퍼팅은 운동이 안 된다 말이야. 고개를 숙여서 몸에 부담이 되는 데다 신경이 쓰여"라고 하셨다. 그 뒤부터 박 대통령이 그린에서 퍼팅을 한 번 하고 나면 항상 함께 라운드하던 박종규 경호실장이 바로 공을 집어 들고 "각하, 다음 홀로 가시죠"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퍼팅을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국가원수로서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뒤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해프닝도 있다.

허정구 회장과 라운드하던 박 대통령이 10번홀 티잉그라운드 앞에 있는 그늘집에서 나를 찾았다. 연락을 받고 10번홀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총을 든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경호원들은 까만 얼굴의 나를 불순분자로 봤던 것이다. "각하가 찾으신다기에 급히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경호원들은 "그래도 천천히 걸어가세요. 잘못하면 큰일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국위를 선양하는 훌륭한 일을 했어. 한 코치는 정말 좋은 선수야. 앞으로 계속 열심히 해"라며 격려해줬다. 그리고 "아직은 골프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훈장을 주지 못해 아쉽구만. 앞으로도 국위선양을 위해 더욱 노력해 줘"라고 말했다. 요즘이라면 훈장을 한 개쯤은 받지 않았을까.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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