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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펜화기행] 봉황 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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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1890년대의 혜화문, 종이에 먹펜, 36X50cm, 2007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성북구 돈암동으로 넘어가는 큰길 옆 언덕에 새로 지은 혜화문(惠化門)이 있습니다. 본래는 큰길 복판 5~6m쯤 높은 곳에 있어 되너미고개까지 한눈에 보였답니다. 되너미고개란 병자호란에 '되놈'들이 쳐들어 왔다가 되돌아갔다 해서 지은 이름인데 지금은 미아리 고개로 불립니다. 혜화문은 태조 5년(1396)에 지어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으나 성종 14년(1483)에 지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혼동되어 중종 6년(1511)에 혜화문으로 고쳤습니다.

서울의 북문인 숙정문(肅靖門)을 폐쇄하고 동소문인 혜화문을 북문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원래 사잇문인 소문은 문을 지키는 출직호군(出直護軍)이 20명이고 대문은 30명인데 혜화문은 30명으로 대문의 대우를 받은 셈입니다.

혜화문 밖에 펼쳐진 넓은 분지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무성하고 복숭아나무가 많아 해마다 봄철이면 놀이 나온 사람들로 골짜기가 미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화동(桃花洞)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혜화문

임진왜란에 문루가 불탄 지 152년 뒤인 영조 20년(1744)에 문루를 다시 만듭니다. 혜화문의 홍예 틀 내부 천장에 다른 문처럼 용을 그리지 않고 봉황을 그린 것은 도화동 일대에 새가 많아 피해가 컸기 때문에 새들의 왕인 봉황을 이용해 막으려 한 것이랍니다.

1928년 일제가 문루를 헐어버리고 1939년에는 석축과 홍예마저 허물어 버립니다. 1994년 자리를 옮겨 복원했으나 성문 앞에 전봇대들이 시야를 가려 보기 흉합니다. 전선을 땅속으로 묻으면 어떨까요.

김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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