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다 어그러져 … 기막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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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강재섭 대표의 경선 룰 중재안에 대해 “원칙이 무너진 것”이라고 반발했다.‘전사’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박 전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연정국악문화회관에서 열린 충청포럼 초청 강연회에 참석,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강정현 기자

"다 어그러졌다. 기가 막히다."

9일 오후 4시쯤 대전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려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강재섭 대표가 내놓은 '경선 룰 중재안'을 수용할 것인지 기자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중재안에 대한 거부감이 묻어나는 어법이다.

박 전 대표가 강 대표의 중재안을 최종적으로 공식 거부할 경우 4.25 재.보선 뒤 표면화된 당 내분 사태는 경선이 없게 되거나 분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강 대표의 중재안을 수용했다.

그는 오후 6시30분쯤 충남 연기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정권 교체를 향한 국민의 뜻과 화합을 위한 당원의 열망을 생각해 당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박 전 대표도 대승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경선 선거인단을 23만1652명으로 확대하고 ▶여론조사 인원 산정 시 '일반 국민'의 투표 참여율이 낮을 경우 투표율 67% 수준으로 투표 가중치를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의 경선 룰 중재안을 발표했다. 경선 선거인단은 '대의원'+'당원'+'일반 국민'+'여론조사'의 네 요소로 구성된다.

박 전 대표는 "일반 국민의 투표 참여율이 낮으면 낮은 대로 둬야지 이를 조정하는 것은 당헌.당규,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표 측의 한선교 대변인은 "국민투표율 67% 수준 보장 규정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당헌 82조 2항엔 국민선거인단 유효투표 80%, 여론조사 결과 20%를 적용토록 명시돼 있는 만큼 가중치를 적용하는 것은 당헌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박 전 대표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만약 원칙과 명분에 어긋난 강 대표의 중재안이 경선 룰로 확정된다면 박 전 대표는 경선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경선 불참을 시사했다. 그럴 경우 한나라당 경선 구도가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연말 대선 판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강 대표는 박 전 대표의 반발과 관계없이 15일께 상임 전국위원회, 21일 전당대회 수임기구인 전국위원회를 차례로 소집해 자신의 중재안을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당내 지분을 반분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중재안에 대한 불만을 실력으로 보일 경우 강 대표가 중재안을 밀어붙이기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이 과정에서 강 대표의 지도부 자체가 와해되는 상황도 아주 배제할 수 없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강재섭 중재안=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내놓은 경선 룰(rule)에 관한 중재안을 말한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은 그동안 대선 경선에 적용될 룰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서로 다퉈왔다. 경선 룰 문제는 당내 최대 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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