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국수 vs 수졸(守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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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8강전 하이라이트>

○ . 윤준상 6단 ● . 윤찬희 초단

장면도(13~26)=정석은 옷을 가득 채운 거대한 창고와 같다. 그 속에서 어떤 옷을 고르느냐. 성격이나 취향이 선택을 좌우하겠지만 '유행'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무작정 좇아다니는 자는 바보다. 연구가 제대로 돼 있는 사람만이 자기 체질에 맞는 좋은 옷을 고를 수 있다.

'국수'가 된 윤준상 6단과 8강전에서 마주 앉은 기사는 이제 막 수졸(守拙)에 오른 윤찬희 초단. 16강전에서 다승.승률 양쪽에서 1위를 질주해 온 2007년의 상승주 목진석 9단에게 일격을 가했으니 가위 입신급 수졸이라 할 만하다.

13으로 바짝 육박해 문제의 접전이 시작됐다. 수없이 두어본 정석 과정이기에 바로 이곳에서 승부가 갈릴 줄은 두 사람 모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14,16으로 빠져나갔을 때 윤찬희가 장고에 접어든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수십 갈래의 길.

'참고도' 흑1의 한 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흑은 5로 모양을 키우고 백은 6까지 두텁게 사는 그림이다. 그 다음 7이 참 좋은 곳. 그런데 윤찬희는 하변이 하도 넓어 살로 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백이 A로부터 추궁하는 수도 조금 켕긴다.

고심 끝에 선택한 수는 17의 파고들기에서 25까지. '참고도'와 비교하면 귀의 임자가 백에서 흑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17은 실리적인 수고 공격적인 수다. 그러나 26이 통렬하다. 지금껏 재미를 봤지만 26을 견뎌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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