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6·25전쟁 일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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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동안 6·25전쟁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여러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왔다. 문학작품속에서도 이 민족적 비극은 처절하게 묘사돼있다. 그러나 의외로 전쟁체험 기록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쟁을 겪은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를 담은 기록은 더욱 흔치않다.
그런 점에서 『월간중앙』(7월호)이 6·25 특집으로 발굴게재한 한 역사학도의 전쟁일기 「서울의 1백일」은 새삼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되새김질 하게 해주고 있다. 주인공은 6·25 당시 서울대문리대 중학과에 재직중이었던 김성칠교수(51년 작고). 그의 일기는 6·25전쟁의 성격,좌익지식인들의 행태,인공의 실체,그리고 전쟁을 겪는 국민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사료로서는 물론 전후세대에게 6·25를 간접체험케 해주는 교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 교수는 전쟁발발 소식을 25일 낮에 처음 알게된다. 그리고 26일 호외와 신문을 받아 보고 「5년동안 민족의 넋을 가위누르던 동족상전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27일 아침 신성모국방의 수도 수원 이전방송을 들으면서 「그래도 설마 서울이야」하던 마음에 맥이 탁 풀린다.
28일 포성이 멈췄나 싶었더니 거리에 인공기가 나부끼고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대한민국이 아닌 딴 나라 백성이 되고 말았다」고 적고 있다.
7월1일 학교에 나갔더니 인민군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는 나이도 어린데다가 영양실조가 된 그들이 그런대로 규율이 엄한 것을 보고 좋은 인상을 갖는다. 그러나 그 인상은 조금뒤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따발총을 들고 나와 교수들 가운데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것을 보고서였다. 그러나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지식인의 나약함이었다. 김 교수의 일기에는 무력한 국민들만 남겨두고 저희들만 남쪽으로 도망간 남쪽정부와 그들이 그동안 저지른 각종 비리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적고 있다. 그러나 적치 90일동안 본 인공의 인위적인 「선거」,메마른 땅에 농작물을 심게하는 「계획경제」,강제동원 되는 「지원병」과 시간 제한 없는 「노동법」,세련미 없는 「한글전용」등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그는 낱낱이 증언하고 있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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