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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 환상에서 깨어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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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는 오래도록 근린 생활환경에서 뭔가 가깝고 친근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마을이라는 말을 편하게 사용해 왔다. 북촌마을.한옥마을.서래마을.다랭이마을.매화마을.곤충마을과 같이 거주지역의 특징을 접두사로 붙여 쓰기도 하고 영화마을.시(詩)마을.헌책방마을과 같이 상업 공간을 지칭하는 데도 썼다.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을버스.마을수퍼 등으로 꼭 '마을'자를 쓴다.

농촌이든 대도시든 마을이라는 단어는 기존의 딱딱하고 무의미한 '근린' 혹은 '지역'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정감 있는 어휘임엔 틀림이 없다.

요즈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와 같이 정부가 또다시 새롭게 마을이 관련된 환경개선사업에 나서고 있다. 행정복합도시의 단지계획 시작점도 '첫마을 사업'으로 이름 지을 정도로 마을은 보편적인 계획 단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회자되고 있는 마을 혹은 마을만들기에 대해 우리는 정말 제대로 알고 있을까. 어찌 보면 마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이러이러 했으면 좋겠다고 이상적으로 설정해 놓은 하나의 상(像)은 아닐까. 마을은 물리적인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구분이 확연한 것도 아니다. 도시계획의 일부로서 인식하기도 하고,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친근감.안정감.유대감, 심지어 선함까지도 기대한다.

마을에 대한 이 같은 막연한 낭만적 생각은 '마을계획'을 치열하게 준비, 실행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종종 마을, 그리고 마을 계획에 대해 갖는 착각을 나열해 본다.

#착각① 마을이 무엇인지 명쾌히 정의할 수 없어도 경험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착각② 우리의 전통마을은 정말 좋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현재 마을이 없다. 착각③ 마을 만들기는 공동선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이루어진다. 착각④ 마을 계획에 관한 모범 사례는 일본의 마치쓰쿠리이고, 이것을 연구하면 우리의 해법이 제시될 것이다. 착각⑤ 주민 참여로 이루어지는 마을 가꾸기의 결과는 좋은 디자인으로 귀착이 된다. 착각⑥ 마을 만들기는 주민이 주도하는 것이고, 주민의 실체는 분명하다. 착각⑦ 마을 만들기는 결국 물리적인 시설과 공간으로 구현된다. 착각⑧ 마을 만들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거환경의 개선이다. 착각⑨ 마을 만들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운동의 실현이다.

이와 같은 착각들을 명쾌히 치유할 정답은 없다. 다만 우리의 사례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양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적절한 깨달음이 생겨날 것이다. 제대로 작동할 '마을 계획'을 시작하는 첫걸음은 '마을'에 대해 쉽게 갖고 있던 여러 생각이 사실은 많은 부분 우리의 환상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본 난은 16개 시.도의 60명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한 중앙일보의 '전국열린광장' 제4기 지역위원들의 기고로 만듭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전국열린광장 인터넷 카페(http://cafe.joins.com/openzone)에 의견을 올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