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 이를 거절하자 당시 군사정권은 태권브이를 반체제세력으로 규정, 폐기를 명령한다. 그리고 그 후 30년. 어느덧 중년의 회사원이 된 훈. 명예퇴직과 딸의 진로 문제가 주 관심사인 그는 어느 날 우연히 깡통로봇 철이와 재회 한다. 어엿한 청년이 된 철이는 훈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30년 전 훈 자신이 동해바다에 수장(水葬)했던 태권브이였는데….
마냥 황당무계한 얘기가 아니다. 요즘 미디어다음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브이'의 실제 내용이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태권브이를 다시 끄집어 내 21세기 버전으로 각색한 이 만화가 온라인상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페이지뷰가 약 30만 건, 편당 조회 수는 100만 건을 넘는다. 한때 이 사이트 최고 인기 작가인 강풀 만화의 페이지뷰를 뛰어넘은 적도 있었다.
이 만화의 작가는 '제피'. 기발한 상상력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데도 필명만 공개돼 네티즌 사이에선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지난달 25일 서울 문학세계사 사무실에서 '제피' 김태건(32.사진)씨를 만났다. 이 출판사는 올 하반기 '브이'를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다. 부산에 사는 김씨는 작품 속에 등장시킬 배경 촬영을 위해 막 상경한 상태였다.
현재 스토리는 태권브이의 후일담을 영화로 만들 계획인 주식회사 로보트태권브이의 양우석 감독과 함께 만들고 있다. 김씨의 단편 내용이 애초 이 회사가 기획하고 있던 영화 시나리오와 너무 흡사해 회사 측이 먼저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2009년쯤 영화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양 감독은 영화 내용이 김씨의 만화와 40~70% 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원래 7월까지 총 52회로 막을 내릴 예정이던 '브이'는 팬들의 인기에 힘입어 9월까지로 연재가 연장됐다. 김씨는 "더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다행"이라고 했다.
이번에 김씨는 남대문과 한강 주변을 주로 찍어 갔다. 카프 박사가 보낸 괴로봇과 태권브이의 한판 대결이 펼쳐질 장소다. 그는 특히 원효대교와 마포대교 근처 한강 둔치에서 펼쳐질 전투 장면을 주목해달라고 했다. 지난해 이곳에 서식하며 영화에까지 등장했던 어느 생명체가 카메오로 출연할 수도 있다는 귀띔이었다.
글=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