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뀐다해도 경제가 못 미더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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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한 두 사람이 어떻게 후보를 뽑느냐를 두고 다투고 있어 한심하다는 게 아니다. 그건 국민이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 떡을 두고 벌이는 집안싸움이라고 외면하면 그만이다. 이 창피한 꼴로 자해극을 벌이는 건 '아, 저 사람들의 수준도 결국은 우리와 다를 게 별로 없구나'하고 넘어가면 된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다음 정권은 잘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빼앗듯 거둬들인 세금으로도 모자라 하고한 날 적자를 내는 정부, 일 잘못한다고 핀잔을 먹으면서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일만 잘하면 되지, 정부가 좀 크면 어떠냐'는 정부에 4년 넘게 실망해 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더 많은 세금과 공무원과 더 심한 규제로 정부의 씀씀이와 입김이 점점 커지면서 시장경제가 허물어지는 걸 걱정해 온 사람은 더 많다. 성장과 활력으로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 경제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사람은 셀 수 없다. 이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야당에 은근한 기대를 했었다. 지금은 없어진 여당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 치고, 적어도 야당은 '큰 정부, 작은 시장'보다는 '큰 시장, 작은 정부'를 바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기대마저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야당의 언행과 우리의 처지가 한심하다는 것이다.

수도 이전 계획부터 보자. 처음에는 한나라당도 '거기에 들어가는 수십조원의 돈은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만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써야 한다' '수도권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당시 여당과 회의 몇 번 하더니 어느샌가 낭비와 국민 부담의 상징인 수도 이전을 축복하는 자리를 같이했다.

포퓰리즘에 관한 한 여당을 뺨치는 야당의 눈치보기는 집값 문제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처음에는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규제를 강화해 공급을 죄고 세금을 올려 수요를 잠재우는 정책, 주택시장을 말려죽이는 제도가 들어서는 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거기서 그쳤으면 '그래, 저 사람들도 부자보다는 훨씬 많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 FTA부터는 여야 간 구분마저 없어졌다. 한나라당 어느 누구도 '아무리 노무현 정부가 한 일이라도 이건 좋은 거다' '어려운 부문이 있겠지만 오늘의 일자리와 내일의 경쟁력을 위해 빨리 비준시키자'며 적극 나선 인물이 없었다(오히려 한나라당을 뛰쳐나가 전 여당 쪽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인물 하나만 확실한 지지 입장을 내놓았다). 억지로 입장을 밝히라고 하면 겨우 한다는 얘기가 '내용을 더 따져봐야겠다'느니 '어려운 부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이들의 수준은 국민연금에 이르러서는 더 내려갈 곳 없이 떨어졌다. 대중영합주의로 그토록 비판받아 온 정부가 의외로 '덜 내고 많이 받는 지금의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바로잡아 달라'고 하자, 한나라당과 전 여당이 '지금처럼 내고 지금보다 훨씬 덜 받는 연금'에 합의해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 있다. 노인들 용돈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연금이 될 운명이다.

이런 야당을 두고 '새 정부면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하는 기대를 지금까지 지녀왔다는 것 자체가 한심스럽다. 시장경제를 걱정하느라 밤을 지새워야 할 정당과 인물들이 '집권을 해야 한다' '대통령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나라와 시장경제가 바로서기를 고대해 온 사람들은 실망에 지쳐 이제 절망하고 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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