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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영어 열풍, 내실있는 공교육이 해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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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제어 영어의 위상=국제어로서 영어의 위상은 우선 사용자 수에서 알 수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세계적으로 4억 명이 조금 넘는다. 모국어는 아니지만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구도 대략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까지 합칠 경우 그 숫자는 20억~30억 명으로 늘어난다. 60억 세계 인구 절반가량이 영어를 사용하거나 영어로 조금이라도 이야기할 줄 아는 셈이다. 인터넷에서도 영어는 주도적 위치다. 검색 사이트 구글은 20억 페이지의 자료를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 50%가 영어다. 이 정보량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미 의회도서관 장서에 버금가는 규모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가 갖는 비중은 매우 크다. 모든 학생은 초.중.고에서 제1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법정 영어 수업은 총 700시간이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는 주요 과목이고, 기업에 취업하려면 영어 실력은 필수다. 국내 토플 시험 응시자 수는 2001년 5만여 명에서 2006년 13만여 명으로 두배 이상 급증하며 전 세계 응시자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토플 시험 접수를 위해 사람들이 토플 시험을 주관하는 한미교육위원단 건물 앞에 줄지어 있다.[중앙포토]

◆황금알 낳는 영어 시장=영어는 하나의 상품으로서도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영어 교육의 최강자는 유럽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이다. 영국 교육부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2002년 기준 영국의 영어 관련 수출액은 약 200억 달러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의 2005년 수출액이 300억 달러임을 감안할 때 영국이 영어라는 상품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영국은 영어 교재 판매로만 향후 15년간 매년 13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2003년 미국의 영어 관련 상품 수출액은 110억 달러를 넘는다. 미국으로 가는 유학생과 어학 연수생이 지출하는 금액까지 합할 경우 그 규모는 더 엄청나다.

영국과 미국이 영어 수출국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수입국이다. 지난해 어학 연수와 유학으로 해외에 지출된 돈만 4조4000억원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비는 15조원을 넘는다. 토플.토익을 주관하는 ETS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인 응시료 수입만 900억원에 달한다.

◆영어 열풍 문제 없나=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면 영어 성적이 좋아야 한다. 사람들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시험으로서의 영어가 열풍을 만드는 셈이다.

시험 위주의 교육은 '고비용 저효율'의 기형적 구조를 만든다. 배우는 사람은 많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구는 적은 결과를 낳았다. 한국은 토플 응시자 수가 세계 1위지만 2006년 현재 147개국 가운데 77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영어를 항상 써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모든 국민이 영어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다. 초.중.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성인이 된 뒤 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어 교육 강화가 국어 교육 약화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조기 영어 유학 열풍으로 학생들이 모국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외국어 습득에 나서며 언어 체계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영어 열풍의 대안=영어 교육이 보다 내실있게 되려면 무엇보다 공교육에서 영어 수업시간을 두 배 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영어마을과 같은 교육기관을 활용해 학생들이 영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학교별로 시행되는 문법이나 독해 위주의 시험을 듣기, 말하기 중심의 국가영어인증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와 별도로 일각에서는 우리말과 영어를 동시에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공용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 국가가 전국적으로 단일 모국어를 갖고 있으면서 내부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전혀 다른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사례는 없다. 공용화의 사례로 거론되는 싱가포르는 다민족.다언어 국가이기에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이다.

이병민 교수 (서울대 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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