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드러내는 일 PKO정책/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이 중의원에서 9일부터 심의에 들어갔다. 이제 법안성립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자민당은 9일 중의원 운영위원회에서 다수결로 밀어붙여 본회의의 법안취지설명을 생략했다.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곧바로 중의원 국제평화협력 특별위원회심의에 들어간 것이다. 자민당이 지금까지 참의원에서 보여주던 행동과 달리 중의원에서는 처음부터 강공책으로 나오고 있다. 자민당이 참의원에서는 과반수가 안되지만 중의원에서는 과반수가 넘기 때문인지 이눈치 저눈치 보지않고 마구 밀어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감춰두었던 발톱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2차대전후 47년간 지켜온 비무장,비군사행동의 기본원칙이 막 무너지는 순간이다.
일본은 헌법과 자위대법이 글자 한구절 변경되지 않았지만 몇차례에 걸친 자의적인 해석으로 자위대가 합헌이라는 주장을 폈고 한술 더떠 해외에 파병까지 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등 주변국이 PKO법안을 우려하는 것도 일본의 이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자세때문이다. 더구나 PKO법안에는 모호한 점이 많다. 군사적 색채를 불식하기 위해 여러가지 제약을 가했지만 모호한 점이 많아 진정으로 군사행동을 하지않으려는지에 의심이 간다.
예를 들면 유엔평화유지군의 주업무와 직접 관계가 있는 후방지원업무에는 당분간 자위대파병을 보류하도록 하고 있으나 PKO법안은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어떤 경우 유엔평화유지군에 자위대파병이 가능한지에 대한 요건을 규정하지 않은채 법률로 정한다고만 되어 있다. 이는 여론의 향배를 봐가면서 집권당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당분간 국내외의 반발을 피하려한 속셈이 엿보인다. 또 자위대를 평화유지군에 파병하는 것은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면서 평화유지활동에는 일정부가 자의로 파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군사부문이라고는 하나 군대를 해외에 보내는데 국회동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이같은 상황들은 일본정부가 필요할때 언제든지 자위대를 보내 무력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