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용지 소나무“떼죽음”/서울 녹번동/천여그루 구멍뚫고 폐유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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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용도 바꾸려는 지주소행 추정/작년말부터 고사… 당국선 방치
공원용지로 지정된 서울 한복판 야산의 50∼1백년생 아름드리 소나무 1천여그루가 기둥에 구멍이 뚫리고 제초제 등이 부어져 무더기로 말라죽어간다. 자연환경 보전의 필요성이 더없이 절실한 때에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되살릴 수 없는 풍치림 낙락장송을 고의로 말려죽이는 범행은 지난해말부터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관계당국은 이를 방치했다. 이 지역은 특히 땅주인들이 건축 등 개발이 가능하도록 지속적으로 공원용지 해제를 요구해왔던 곳이어서 용도변경을 노린 고의적 자연 파괴행위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현장=문제의 지역은 서울 은평구청 바로 뒤편 녹번동 100의 1 일대 1만7천여평,40의 1 일대 7천여평 등 두곳의 주택가 야산.
지난해말부터 이곳에 자라는 50∼1백년생 소나무 등 1천여그루가 「고사작전」의 피해를 보아 현재는 거의 말라죽었다.
녹번 제1공원용지인 40의 1 일대 4백여그루에는 뿌리 부분에 다량의 제초제·폐유 등이 수차례에 걸쳐 뿌려진 흔적과 함께 껍질이 벗겨지고 밑동부터 시커멓게 말라죽은 상태다.
제2공원용지인 100의 1 일대 7백여그루에는 밑동에서 40∼60㎝ 높이에 드릴로 뚫은 듯한 직경 1㎝·깊이 10㎝ 가량의 구멍이 4∼5개씩 패어있고 그속에 액체 제초제 등을 집어넣는 수법으로 집단고사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오래된 거목의 밑동에는 20여개의 드릴 구멍이 나있는 것도 여러 그루 있었다.
◇의혹=이 일대는 77년 7월,79년 6월 건설부·서울시에 의해 공원용지로 확정고시된 지역이나 30여명의 소유로 돼있는 사유지. 대부분 강남지역 거주민인 땅주인들은 그동안 『공원용지 지정을 풀어 아파트 건축 등 개발을 가능케 해달라』며 당국에 수차례 진정을 계속해왔으나 관할 은평구청은 『고목이 들어차 있어 형질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인근 주민들은 『지난해말부터 2∼3명의 괴청년들이 심야에 석유통을 들고 산에 오르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며 용도변경을 노린 고의적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 이모씨(49·운수업)는 『89년 인근 야산에서도 소나무 4백여그루가 비슷한 방법으로 떼죽음당한뒤 H아파트가 2동 들어선 예가 있다』며 『환경보호 차원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은평구청 전기택건설국장은 『최근 현장조사 결과 고의적 범행이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단 토지용도변경을 노린 지주들의 소행으로 보여 진상조사후 관련자 모두를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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