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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사람은 가라 ” 親盧의 반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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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7면

두 달 전 일이다. 열린우리당 내의 대표적 친노(親盧) 인사인 이해찬 전 총리와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서울 시내 한정식집에 마주 앉았다. 김 전 지사가 먼저 “이 전 총리 같은 능력 있는 분이 (대선에) 참여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운을 뗐다. 이 전 총리는 “김 전 지사 같이 경륜 있는 분이 앞장서시는 게 좋겠다”고 말을 받았다. 주거니 받거니 두 사람은 대취했다. 동석했던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의 전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꿈같은 얘기였다. 친노 명함으로 범여권의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드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로 보였다. 여당 의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던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당적을 버린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5일 오후 만난 중도 성향의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범여권이 친노-비노(非盧)로 쪼개질 경우 탈당을 결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탈당을 시사한 정동영ㆍ김근태 전 의장이 당을 떠나면 친노 세력이 열린우리당으로 총결집해 당 지지도가 오히려 더 올라갈 것이란 말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 여러 가지 일을 벌일 힘이 있지만 당을 나간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느냐”고도 했다.

상황이 바뀐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노 대통령 지지도가 30%대로 올라갔다. 범여권 전체가 영입에 공을 들이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현 정권의 핵심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 ‘참여정부 평가포럼’이란 외곽조직을 만든 것도 열린우리당 현역 의원들에게는 부담이다. 자신이 탈당할 경우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이들 인사가 곧바로 그 자리를 차고 들어와 내년 총선에 출마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내 일부 친노 인사들은 요즘 공공연히 노 대통령 복당을 얘기한다. 이해찬ㆍ한명숙 전 총리와 김혁규 전 지사,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 인사들로 대선후보 1차 경선을 치르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쯤 되면 ‘친노의 대반격’이다. 김혁규 전 지사는 “다음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유산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장관도 최근 열린우리당 중진 의원과 만나 “나는 당을 지킬 테니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했다고 알려졌다. 일부 당 사수파 사이에선 “비례대표 의원들도 편안하게 (출당시켜 의원직을 유지하게) 해주자”는 말도 나온다.

비노 진영에서는 이런 움직임의 밑바닥에 노 대통령이 퇴임 후까지 자기 정치를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면 당분간 통합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느 쪽이 더 많은 명분과 세력을 확보하느냐다. 비노 진영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대한 연대 요청이 급증한 이유다. 김근태 전 의장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와는 좀 나중에 한 테이블에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손 전 지사는 당분간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과 머리를 맞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다른 제3후보들도 그렇다. 대선주자 원탁회의를 주장했던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은 “지금 원탁회의를 하면 또 열린우리당 출신들만 모인다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비노 진영의 고민이 깊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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