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서 춤추는 향기의 향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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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29면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는 흔히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이라 불린다. 그만큼 프랑스 사람이 자랑하고 사랑하는 와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총리가 직접 프랑스를 찾아와 전쟁에 대해 사과했던 곳이 바로 ‘샤토 마고’ 이기도 하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샤토 마고’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손녀의 이름을 마고라 짓기까지 했다. 영화배우이자 모델로 활약했던 마고 헤밍웨이다. 그도 1996년 할아버지처럼 자살했다.

와인 시음기-‘샤토 마고 2004’

영화로도 만들어진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 『실락원』에도 ‘샤토 마고’가 나온다. 죽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마시는 술로 등장한 것이 ‘샤토 마고’다. 이 애절한 장면이 나온 뒤 ‘샤토 마고’의 인기가 더 치솟았다.

‘샤토 마고 2004’ 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단지 지금 테이스트하기엔 너무 아까운 와인이라는 점만 빼면.

‘샤토 마고’는 카베르네 쇼비뇽 (Cabernet Sauvignon)을 베이스로 하며 멀로(Merlot)와 프티 베르도 (Petit Verdot)를 블렌딩해 만든다. ‘마고’는 가장 화려한 향기를 지닌 와인, 가장 여성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와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곱고 단아한 자태가 떠오르는 그런 와인이다.

‘샤토 마고 2004’를 디캔터에서 네 시간쯤 브리딩한 뒤 시음에 들어갔다. 매우 고운 다크 루비 컬러가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코다. 화려한 플라워 캐릭터가 먼저 올라오며 뒤를 이어 블랙베리라즈베리 플럼 위주의 검정 계통 과일 캐릭터들의 향이 피어오른다.

시간을 더 두고 보니 오크 시더 등의 우디한 느낌도 살아나며 초콜릿 향기까지 느껴진다.

마치 코에서 춤추듯 느껴지는 향기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강한 임팩트는 주지 않지만 부드럽고 은은하면서도 힘을 잃어버리지는 않는 향기들. 그 아름다운 향기에 취해 와인을 입으로 가져간다.

비단결같이 실키한 타닌이 입 안 가득히 퍼지며 뒤를 이어 산뜻한 애시디티가 따라온다.

풀보디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지만 제법 보디감이 느껴지며 피니시도 긴 편이다.

아직 제대로 숙성되기 전 상태라 복합적인 맛이나 향은 없지만 앞으로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면 좋은 와인으로 거듭날 듯하다.

일반적으로 ‘마고’는 애버리지 빈티지는 10년 이상, 베스트 빈티지는 20년 이상 숙성이 필요하다.

추천 빈티지는 82·83·85·86·90·95·96·99·2000·2001·2003년 빈티지다. 2004년 빈티지도 제법 좋아 보이지만 10년 정도 재워둔 뒤 드실 것을 권한다. 이준혁(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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