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다시 생각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호 13면

지난해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 ‘괴물’이 역대 흥행 기록을 경신했을 때 신문 광고엔 다음과 같은 카피가 등장했다. ‘역대 영화 1위, 감사합니다’.

소설가 천명관의 시네마 노트

이 카피가 나는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역대 영화’라는 말도 억지스러운 데다 ‘괴물’이 ‘역대 흥행 1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역대 영화 1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그 어색한 카피를 고집한 데는 아마도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으니 그것이 곧 최고의 영화 아니냐는 우격다짐 식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제작진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들은 아마도 진심으로 ‘괴물’이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만의 믿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믿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봉 기간 거의 지상중계를 하다시피 한 천문학적인 숫자의 상승 곡선, 모든 매체의 문화면을 독점한 ‘충무로 영웅들’의 인터뷰 기사와 후일담, 감독의 말 한마디조차 놓치지 않고 성실하게 소개한 인터넷 포털들, 그리고 그 기록의 대열에 끼지 못하면 대한민국에서 당장 추방이라도 될 것처럼 미친 듯이 극장으로 몰려간 관객들….

한마디로 그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떠들썩하게 즐긴 한바탕 축제였다. 그때는 어디를 가나 한강에 나타난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영화를 하는 동료들은 물론 기자를 만나도, 문인들을 만나도,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친구를 만나도 온통 ‘괴물’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상황이 이쯤 됐으니 제작진에서 ‘역대 영화 1위’라고 생각한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닐 것이다.

충무로엔 ‘흥행이 곧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예술영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곧 예술영화라는 뜻이다. 하지만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100편이 넘게 개봉된 지난해 영화 가운데 단지 20%만이 손익 분기점을 넘긴 것을 보면 흥행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신 흥행이 되면 모두가 행복하다. 제작자와 투자자는 돈을 벌고, 배우와 감독 또한 인센티브를 받으며, 작가는 크레디트를 얻고, 스태프는 보너스를 기대할 수 있다.

다시 ‘괴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돌아보면 모두가 즐거운 축제였다. 제작자와 감독은 돈을 벌었고, 배우는 인센티브를 받았으며, 관객들은 행복했다. ‘흥행이 곧 예술’이라는 주장대로라면 이것은 예술영화 중에서도 엄청난 예술영화인 셈이다.

자, 그러면 앞으로도 줄곧 이런 영화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기에 누구는 겨우 3만 명이 보는 영화를 극장에 걸어놓고 이런저런 시비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걸까? 또 왜 한국에서 자신의 영화를 개봉하겠다는 둥 안 하겠다는 둥 자해성 선언을 남발하며 언론과 입씨름을 벌이는 걸까?

누구 얘기냐고? 그렇다. 바로 ‘충무로의 풍운아’, 김기덕 감독의 이야기다. 그는 제작비 2억5000만원에 그의 열네 번째 영화 ‘숨’을 만들었고 4월 26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리고 제60회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
천명관씨는 충무로에서 오랜 낭인생활 끝에 장편소설 ‘고래’로 등단한 뒤 소설과 연극, 영화와 드라마 등 온갖 이야기 예술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단 소설가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