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불참 명분 쌓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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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강재섭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왼쪽부터)이 4일 오후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당 쇄신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동영상 joins.com 조용철 기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4일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난 뒤 캠프에 함구령을 내렸다.

비서실장인 주호영 의원은 "경선 룰 문제를 당 지도부에 일임한다는 데 동의한 만큼 박근혜 전 대표가 나중에 무슨 말을 했더라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밤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당에서 발표한 데서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며 "내가 당원.대의원과 국민을 50 대 50으로 맞춰 경선 룰을 만들자는 것은 한나라당 승리를 위한 원칙론을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의 민주화라든가, 경선에 국민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박 (전) 대표께서도 옛날부터의 지론 아니었느냐. 시대가 바뀌어서 그것이 더 강조되는 시대가 왔지 않느냐'고 했다. 원칙론이고 덕담이었다"고 말했다.

캠프 일각에선 박 전 대표에 대한 불쾌감도 나왔다. "당 대변인의 공식 합의 발표까지 뒤집은 것을 보니 경선에 불참하려는 명분을 쌓겠다는 것 아니냐"거나 "회담 자체가 이 전 시장의 제안으로 마련된 만큼 이 전 시장이 화두로 던진 '화합' 작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전략적인 제스처 같다"는 반응들이다.

이 전 시장 캠프 내부엔 박 전 대표와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보다는 '어른답고 의젓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온건론이 우세하다. 온건론은 "3일 기자회견에서 강 대표 체제를 인정하고, 화합을 이슈로 던진 만큼 박 전 대표를 계속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강경론자들은 당초 6월 경선을 주장하다 8월 경선에 합의해준 것이나, 강재섭 대표를 사퇴시키는 것까지 고려했다가 다시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처럼 번번이 박 전 대표 측에 밀리는 모습을 보인 게 불만이다.

이 전 시장은 캠프 내 온건론에 힘을 실어 주는 분위기다. 이 전 시장이 이날 3자회동에서 경선 룰 작업을 당 지도부에 일임한 것이나 "(회동 내용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의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유연한 태도 때문에 이 전 시장 측이 강 대표 측과의 사전 정지 작업에서 경선 룰과 관련해 수용할 만한 수준의 대안을 보장받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당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의 한 측근은 "강 대표가 양쪽 입장을 절충할 수 있는 두 가지 대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안다"며 "당 지도부가 대안을 제시하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이 전 시장의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박 전 대표가 기존의 입장에서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다고 버티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이 전 시장 진영이 현재처럼 온건론이 우세한 대오를 유지하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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