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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대만 모델 합쳐 성장 일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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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10월 31일 현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가 동아시아포럼 서울 회의(12월 15~17일)에 참석해 아세안과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강조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5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월간중앙과 한 시간가량 인터뷰를 했으며 문정인(연세대 국제정치학)교수가 대담을 맡았다. 이 대담의 상보는 월간중앙 1월호에 실린다.

문정인 교수=1980년대 제안한 동아시아 경제 그룹과 오늘날 동아시아 공동체의 모습을 비교해 달라.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처음 동아시아 경제 그룹을 제안했을 때 중국을 제외한 모든 동북아 국가들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미국 역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훨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세안+ 3 개념이 등장했다.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를 되살린 주인공 중 하나다.

문=한.중.일이 각각 아세안과 개별적으로 관계 강화를 추동하고 나섬에 따라 아세안+3 계획은 상대적으로 퇴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하티르=오히려 그런 상황이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세안이 동북아 3국 모두와 (개별적) 관계를 맺는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할 날이 올 것이다.

문=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문화.언어.역사.종교.인종 등 다른 점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연합이 어렵고 공유할 만한 적극적 정체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마하티르=우리 모두는 현재 세계화와 강력한 시장자유화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계화에 대응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가 세계화의 개념을 만들어 낸 게 아니다. 능동적일 수 없다. 좋건 싫건 서구가 제시하는 개념들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에 맞서 동아시아가 취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 방법의 하나로 일전에 중국 하이난(海南)에서 열린 동아시아 회의 때 세계화세금(World Tax)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세계화로 이윤을 창출한 기업들에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기업 활동을 하는 다국적 기업들 역시 세계 발전에 공헌해야 하기 때문이다. 빈곤 국가의 발전을 돕는 데 사용하자는 것이다.

문=마하티르의 경제개발 모델이 무엇이냐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대기업 육성).대만(중소기업 육성)모델에 초점을 뒀다는 의견과 일본과 한국.대만 모델을 합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마하티르=세 국가 모델을 합쳤다. 말레시아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은 무엇이든 도입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현재 우리가 이뤄내고 있는 성과들을 끌고 나갈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 모델이 필요하다. 또 말레시아에는 많은 화교가 있고, 강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화교가 운영하는 기업들은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그리고 일본 모델은 정부와 민간부문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많은 도움이 됐다.

문=97년 금융위기 때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사항을 거절했다. 반면 한국은 IMF의 권고 사항을 충실히 따랐다.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두 나라 모두 난관을 이겨냈다. 만약에 다른 나라들이 비슷한 난관에 부딪힌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안하겠나.

마하티르=한국은 조선.자동차.전자 산업 등이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은 금융에 문제가 있었을 뿐 생산능력은 뛰어났다. 한국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고,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도 갚을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다르다. 한국처럼 차관을 들여왔다면 말레시아는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래서 찾은 우리만의 방식이 '자본 통제(Capital Contral)'였다.

우리는 외국 자본 세력이 단기투자를 한 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외국 자본이 투자 후 1년이 지나지 않으면 이윤을 가져갈 수 없도록 했다. 이 조치가 취해진 98년 9월~99년 9월 1년 동안 외국자본이 투자된 주식의 가격은 두배까지 올랐다.

또 우리는 환율 고정을 통해 말레이시아 돈의 가치가 조작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이러한 말레이시아 방식을 다른 나라에 권하고 싶지는 않다. (웃음) 말레이시아 경제의 또 다른 강점은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하는 저축액이 있다.

문=말레이시아의 정보기술(IT)산업은 중국.대만.한국보다 뒤처져 있다고 할 수 있다. IT 관련 외국의 직접 투자를 어떻게 유치할 수 있었나.

마하티르=사이버 법률(CYBER LAWS) 같은 것으로 투자환경을 조성했다. IT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매번 비자를 받지 않고 언제든지 말레이시아 입국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사업 편의를 최대한 도와주는 게 이 법의 목표다. 오늘날 말레이시아에는 9백여개의 외국 기업들이 있다. 이 중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기업이 80여개에 달한다.

문=무슬림 테러리스트를 어떻게 평가하나.

마하티르=이슬람 영토는 무슬림의 소유다. 땅을 빼앗긴 상황에서 무슬림은 종교의 힘에 의존한다.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종교의 힘에 의존한 것처럼 말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는 기독.힌두 테러리스트와 달리 유독 그 종교적 배경이 강조된다. 이것은 매우 불공평하다.

문=미국의 대테러전 방식을 지지하나.

마하티르=미국은 오히려 테러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슬람세계가 미국과 항상 나쁜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에는 이슬람국가들의 적은 영국과 프랑스였다. 오히려 미국과 이슬람 국가는 당시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이슬람은 공정하지 못했던 국가에 대항하는 것뿐이다.

문=싱가포르의 리콴유처럼 선임 장관으로 남을 계획인가.

마하티르=많은 사람이 내가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문=두 사람의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마하티르=그 이전에도 공통점은 없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절대 다수당이 있지만 야당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야당이 있었다.

문=중국 위협론을 어떻게 보나.

마하티르=중국 위협론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 전쟁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중국이 바라는 것은 경제적인 번영과 보다 높은 삶의 질이다. 중국이 자신들의 군사력을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리=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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