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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눕는다(유승삼칼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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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는 복지사회의 구호만은 아니다. 이 건강하고 의욕에 넘친 구호가 바다를 건너오면,병들고 부패한 사회를 웅변해 주는 역설의 동음이의어가 된다.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병실을 얻는데서부터 죽어 육신을 누일 자리를 얻어 흙에 덮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들은 부패를 공기처럼 숨쉬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부패 마시며 사는 사회
며칠전 한 신문은 요즘 징코민사건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보사부 약정국의 7급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구조적 부패의 늪에서 고민하다 끝내 사직하고만 기막힌 사연을 전했다. 그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가 택한 다음의 인생행로가 시사적이고 상징적이었다. 그가 택한 곳은 다름아닌 수도원이었던 것이다.
수도원처럼 사회의 일상적 구조와 인간관계로부터 절연된 곳을 택하지 않고서는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이 있었다는데서 우리는 처연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총체적 부패」라고 일컬어 질수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도 정직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요즘 사정바람이 불면서 거의 매일같이 공무원들의 비리가 들춰지고 있지만 지난 일요일밤 한 TV가 보여준 것처럼 종합청사 곳곳엔 국가의 장기계획을 세우느라 밤을 하얗게 밝히고 있는 많은 공무원들이 있다.
세상이 부패했다고 마냥 한탄하고 비난할 일만도 아니다. 한 부패연구보고서의 결론에는 이런 것도 있다.
『모두가 부패했다고 세상에다 떠들어대기만 하는 것은 부패분위기를 형성할 뿐이다. 모두가 자신들이 부패풍토속에 살고 있고 또 자신들이 부패해 있다고 느낀다. 모두가 부패했는데 나라고­,이것이 사람들의 용기를 꺾게 하는 부패풍토다.』
그렇지만 만연된 부패가 많은 선한 사람들의 의욕을 꺾게 하고 직업적 자부심마저 앗아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게 분명한 사실인 이상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패에 대한 처방은 과연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부패에 관한 국내외의 많은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처방은 가지만을 칠게 아니라 부패의 구조,부패의 고리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며 그 첫걸음은 공직사회의 청렴과 공정이라는 것이다.
○한 공무원의 슬픈사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는 행정의 재량권 축소와 공개화,처벌의 엄정과 신속,그리고 처우개선을 제시하고 있다. 스웨덴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은 서구사회가 공직사회의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뇌물을 합법적인 보수로 변형시켜 하위 공무원의 보수를 개선한데 있었다』고 지적한바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모든 부패연구가 문제해결의 결정적 열쇠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지도층,그중에서도 최고지도자의 도덕성이다.
뮈르달은 「최고지도자의 청렴없이는 부패에의 투쟁은 전혀 가망이 없다」고 못박고 있다.
우리의 정치사는 곧 사정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권의 초기에 권력은 늘 국민에게 청렴을 약속하며 사정의 칼을 빼들었고 정권말기에 가서는 예외없이 권력누수와 기강해이를 이유로 또 사정의 칼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우리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정권이 탄생때부터 도덕성을 인정받고 최고지도자가 혁명적 결단으로 지속적으로 도덕성을 실증해보이지 않는한 부패구조는 그대로 남아 사정의 효과를 무색하게 하기 일쑤다.
최근 12명의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일으킨 신선한 바람에 대한 중진의원들의 반응도 그랬다.
여당의 당3역중 한사람은 『한번 해보는 거지. 자기네들 이미지 높이려는 행동 아니겠어』란 말로 비하해 버렸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지난 90년 3월부터 장장 1백회에 걸쳐 연재해온 「정치와 돈」이라는 시리지는 우리 사회 부패의 근원인 정치부패는 권력의 창출과정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권력의 유지과정을 통해 고착화됨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진정 부패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목하 전개되고 있는 권력창출과정에서의 불법과 비리를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를 통해 도덕성 있는 정권창출이 이뤄지도록 해야한다.
○도덕성 강한 정권창출
노나라의 실권자 이강자가 도둑에 시달려 그 대책을 공자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이러했다. 『스스로 물건을 탐내시지 않는다면 상을 준다해도 훔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입니다.』
­무도한 자들을 죽여 올바른 길을 이룩하게 하는건 어떻습니까.
『정치를 하실 것이지,죽이는 일은 해서 무엇하시렵니까. 군자의 덕은 바람이라 하겠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 하겠습니다. 풀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눕습니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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