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11번 참가 김명곤옹|"남북단일 팀 보는게 마지막 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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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올림픽에 무려 11번째 참가하는 국내 스포츠계인사가 있다. 바로 김성집 태릉선수촌장과 함께 한국올림픽출전사의 산증인인 복싱계의 원로 김명곤(80)옹이다. 52년 헬싱키대회 때 복싱감독으로 올림픽에 첫발을 내디딘 김옹은 바르셀로나대회가 11회 연속 올림픽출전이 되는 것이다. 35도의 때 이른 더위가 대통령배복싱대회를 강타한 대구실내체육관에서 김옹을 「스포츠 초대석」에 초대했다.
-40여년 동안 모두 10차례나 올림픽에 참가, 감회가 남다르실텐데요.
▲올림픽이 전 인류의 축제 한마당이긴 하지만 참가 때마다 깊어지는 생각은 올림픽이 각 민족의 저력과 특징을 과시하는 시험무대라는 점이지요. 한 예로 멕시코에서 치러진 68년 올림픽은 「태양의 아들」이라는 멕시코의 전통문화를 집중소개, 갈채를 받았고 한국이 불참했던 80모스크바대회는 화려한 개·폐회식행사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인 조직운영과 살풍경한 거리로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회는 언제였습니까.
▲52년 헬싱키올림픽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참가한 점도 있었겠지만 당시는 전쟁 중 체육회가 부산 피난시절이라 올림픽배지를 팔아 만든 기금으로 가까스로 출전비용을 마련했습니다. 전화 속에 출전한 팀으로 대환영을 받았지만 선수들은 핀란드의 백야 현상에 적응하지 못해 무진 애를 먹었지요.
-대회 때마다 에피소드도 많았을텐데요.
▲제가 본부 임원으로 참가한 56년 멜버른대회는 농축산의 나라 호주의 특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한국선수단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흰옷을 뒤집어쓰고 방역 소독세례를 받아야했습니다. 당시는 또 영어소통이 어려운 때라 한 임원이 멜버른시내를 관광하다 어떻게 왔느냐는 현지인의 질문을 받고는 급한 김에 『서울 스타트, 센터 마닐라, 멜버른 스톱』이라고 대답해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남게됐지요. 4·19혁명 뒤에 맞은 60년 로마올림픽에선 제대로 훈련을 못해 복싱선수들이 추풍낙엽으로 자꾸 떨어지자 최영춘 감독이 자신이 링에 올라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이를 말리느라 혼이 나기도 했구요.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동안 올림픽의 성격 또한 많이 변했을 텐데요.
▲정치와 상업주의에의 오염이겠지요. 양정모가 첫 금메달을 따낸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아프리카의 블랙파워 대두로 정치적으로 오염되기 시작, 80년 모스크바대회와 84년 LA올림픽은 반쪽대회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그런 의미에서도 동·서 화합을 이룬 88년 서울올림픽은 의미가 컸다고 봐요. 최근엔 지나친 상업주의 추구로 벌써부터 바르셀로나의 물가가 걱정돼요. 또 한국은 대회마다 참가인원이 늘어나는 반면정신력은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앞으로의 소망은.
▲남북한이 단일 팀을 구성,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대구=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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