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두점을 잡을 수 없는 비밀은 무엇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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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4보 (59~72)]
白.胡耀宇 7단 黑.李世乭 9단

백△로 뻗어 전면전이다. 병력은 백의 압도적인 우세. 전투력이 좋은 李9단이지만 일단은 힘겨운 싸움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李9단이 눈을 의심케 하는 실수를 범했다.

바로 59로 뛰어나가 60으로 뚝 끊긴 것.'참고도' 백1처럼 두면 끊기지 않는다. 실전은 바로 끊긴다. 후야오위7단은 무슨 횡재인가 하면서도 혹시나 함정이 기다리지 않을까 신중하다. 그러나 흑에 60의 절단은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검토실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李9단이 '참고도' 흑1 같은 쉬운 수를 놓친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흑의 치명적인 고통은 중앙 전투가 발등의 불처럼 화급한데 65로 후방을 지켜야 한다는 데 있다. 이 수를 손빼면 백A의 선수에 이어 B로 끊겨 전투의 핵심이 잡혀버린다.

66에 이르러 흑돌들은 뿌리 잘린 나무들처럼 허공에 떴다. 서로의 연락도 완전히 끊겼다. 사방은 강고한 백의 군사들. 흑이 살아나갈 길은 멀고 아득해 보인다.

하지만 설상가상의 李9단에게도 비장의 한수가 있었으니 바로 67,69다. 백70에는 71로 끊고 백이 72로 따낼 때 흑C로 두어 두점을 잡는 수. 이것으로 흑은 요석을 잡고 생환하게 된다. 그런데 모니터에선 두점을 잡을 듯하던 李9단이 무엇엔가 놀란 사람처럼 황급히 손을 되돌리고 있다. 그러고는 긴 침묵과 장고.

한참을 연구하던 검토실의 프로들도 비밀을 알아챘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백은 두점을 잡을 수 없었다. 잡으면 일거에 지고 만다. 왜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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