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국으로 치닫는 일본/PKO법안 통과와 대외정책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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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엔활동 참여명분 내걸고 강행/국내외 반발고려 전투조항 삭제
PKO법안이 성립되면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90년 10월 자민당이 처음 국회에 제출했던 PKO법안이나 지난해 12월3일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과 비교하면 이번 법안내용은 크게 달라졌다.
일본정부는 ▲자위대를 유엔평화유지군(PKF)에 파견하려면 국회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PKF주요임무 참여는 보류하고 ▲3년뒤 PKO법을 완전 재검토키로 했다. 이는 자민당이 공명당과 민사당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또 ▲파견대상지역에 휴전이 성립돼 있고 ▲분쟁당사자들이 자위대 파견에 동의하고 ▲활동은 중립적으로 하고 ▲무기사용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에 그치고 ▲휴전이 깨질 경우 즉각 철수한다는 소위 PKO 5원칙을 세워놓았다.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더라도 전투에 휘말릴 우려가 있는 행위는 하지 않기 위해 활동내용도 당초의 법안과 달리 대폭 수정됐다. 이재민구호·환경복구사업 등 12개 활동내용중 군사적 색채가 강한 무기 반입반출 감시,완충지대 순찰,무장해제와 감시 등 6개 항목은 보류됐다.
이는 군사적 색채가 짙은 조항을 제외함으로써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국내외의 알레르기반응을 조금이라도 완화해보자는 배려로 보인다.
일본은 국제공헌,특히 인적공헌을 위해 PKO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걸프전당시 일본은 1백30억달러라는 엄청난 전비를 지불하고도 다른 서방국가들처럼 땀과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미국의 요구에 큰소리 한번 못치고 돈을 내야 했다. 일본은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돈만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으며,일정한 군사력을 가져야 국제사회에서 행세를 할 수 있음을 체험한 것이다.
PKO법안에 대한 일본국민의 반대여론도 90년 10월의 76%에서 36%선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PKO법을 통과시켜 보자고 적극 나섰다.
사실 법내용만 놓고보면 일본이 국제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유엔깃발하에 해외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으로 별문제가 없다. 또 PKO나 PKF에 군대를 파견하는 나라는 많다. 현재 12개지역서 PKF가 활동하고 있으며 유엔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에는 44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중국 등 이웃나라들이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는 것은 일본이 과거를 명확히 청산하지 않은 때문이다. 막강한 경제력의 일본이 이제 군사적으로도 해외무대로 진출할 경우 아시아는 완전히 일본의 앞마당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군국주의로야 가지 않겠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충분하므로 주변국가들에 이에 대한 설득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국내의 반대는 PKO법 위헌시비,그리고 친지를 다시 전장에 보내 피를 흘리게 하기 싫다는 논리다.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된다는 것은 일본의 대변신을 예고하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군사대국으로 치닫는 길이 열렸다고도 할 수 있다.<동경=이석구특파원>
□PKO법안 처리 일지
◇91년
▲9월19일=일본정부 PKO법안 국회제출
▲11월27일=자민·공명 양당만으로 중의원 국제평화협력 특별위원회에서 전격가결
▲12월3일=중의원 본회의 통과
▲12월20일=참의원에서 계속 심의키로 결정
◇92년
▲4월28일=참의원 국제평화협력 특별위원회에서 심의재개
▲5월29일=자민·공명·민사 3당법안 수정안에 합의
▲6월5일=참의원 국제평화협력특위에서 3당수정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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