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국가 브랜드를 많이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얼마 전 부도 직전까지 갔던 어느 유럽 명품 섬유회사는 한국인들의 열광적인 구매 덕분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직후 필자는 미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새벽 2시쯤 앵커리지 공항에 기착했을 때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 내에 있던 그 명품 매장은 가격 할인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인으로 북적댔다. 여기서 한국인들의 명품 구매행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처럼 명품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명품 기준으로 보면, 이를 잘 만드는 나라는 선진국, 일명 짝퉁이라 불리는 모조품을 만드는 나라는 중진국, 이것도 못 만드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실제로 인터브랜드사가 조사한 세계 100대 브랜드는 모두 선진국 것이다. 그중 미국이 51개, 독일 9개, 일본 8개, 프랑스 8개, 한국이 3개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는 인구가 한국의 6분의 1도 안 되는데 놀랍게도 5개나 된다.

스위스는 브랜드 왕국이다. 국기(國旗)도 상품화하고, 심지어 군(軍)도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브랜드로 명품화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밀은행이나 고급 시계는 물론, 심지어 국가경쟁력연구기관인 IMD, 다보스포럼으로 유명한 세계경제포럼(WEF)도 브랜드화하고 있다. WEF에 따르면 2005년 글로벌경쟁력 세계 제일의 나라는 바로 스위스다.

한국은 어떤가? 짝퉁 단계를 지나 명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이미 국산 명품 중 외제를 앞서는 것도 적지 않다. 도쿄의 어느 여행사 직원은 1990년대만 해도 한국 여행자들이 일본에 오면 꼭 아키하바라(용산 전자상가 같은 곳)에 들러 명품 전자제품을 사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 전자제품이 더 좋기 때문에 일제 전자제품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은 앞으로 일류 선진국들과 브랜드를 놓고 생사를 건 경쟁을 해야 한다.

한국은 나라의 브랜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대.중.소기업 모두 브랜드 개발에 나서야 한다. 이는 기업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의 3대 국가대표 브랜드는 삼성. 현대. LG다. 세계 100대 브랜드 역시 모두 대기업 제품이다. 국내 기업들이 브랜드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총액출자.순환출자 등 기업 규제가 철폐돼야 한다.

둘째, 지방화 시대 대.중.소도시들도 모두 브랜드 개발에 나서야 한다. 안동시는 안동소주. 안동 간고등어. 안동포. 하회마을 등 대표하는 브랜드가 많다. 한 지방도시 문화전문가는 그 도시가 안동보다 인구가 3배가 넘는데 이렇다 할 대표 브랜드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셋째, 미국 기업은 스타벅스 커피.던킨 도넛 등 먹는 것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글로벌시대는 IT.BT.NT 등 하이테크뿐 아니라 커피.아이스크림.비빔밥 같은 로테크(저기술)나 노테크 산업도 브랜드화하면 성장동력 산업으로 만들 수 있다.

넷째, 한국에는 한글.거북선.이순신.고려청자.기업인 등 브랜드화할 수 있는 대상이 많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전문가, 경영인도 많다. 이들로 하여금 각종 국가대표 브랜드 개발을 신나게 할 수 있도록 하자.

마케팅의 권위자 필립 코틀러는 "브랜드의 중요성은 날로 증가하며 브랜드의 미래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명품 국가, 명품 지역, 명품 기업 등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살길이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