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에 “먹구름”/덴마크 국민투표 부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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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불선 일부국가 뺀 유럽통합도 고려
덴마크 국민투표에서 유럽동맹조약 비준이 실패함으로써 유럽공동체(EC) 회원국들의 야심적인 유럽통합 노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덴마크의 국민투표는 12개 서명국중 가장 먼저 비준여부를 확정짓는 투표라는 점에서 유럽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다. 더구나 덴마크 국민들의 전통적인 반유럽성향을 고려할때 이번 국민투표는 유럽동맹의 순항여부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져왔다.
덴마크 국민들의 비준안부결로 이 조약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원칙적으로 이 조약은 12개 조약당사국 모두에서 비준돼야만 발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크 들로르 EC집행위원장은 『덴마크에서 비준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조약내용에 대한 재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달말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개최될 EC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최대현안으로 다뤄질 수 밖에 전망이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비준이 실패했다고 유럽통합실현노력 전체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덴마크를 뺀채 비준이 이루어지는 나라들만으로 통합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나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그러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미테랑대통령은 지난달 있었던 불독정상회담을 마친뒤 『한 두나라에서 비준이 부결되더라도 나머지 서명국들이 모여 조약실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각자 예정대로 비준절차를 밟아나가면 된다는게 우리 두사람의 똑같은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복잡한 법적·기술적 문제를 수반하게 된다. 예컨대 덴마크같은 나라가 EC회원국이면서 유럽동맹에는 참가하지 않을 경우 같은 유럽문제라 하더라도 구체적 내용에 따라 관련여부가 다르기 때문에 회의를 열더라도 EC차원문제인지,유럽동맹차원의 문제인지에 따라 덴마크대표는 의제가 바뀔때마다 회의장을 들락거려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로서는 따라서 나머지 국가들의 비준절차를 지켜보면서 적당한 시점에 다시 비준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가장 현실적 방안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이번에 부결된 비준안을 그대로 다시 국민투표에 부칠 수는 없는만큼 덴마크국민들의 여론을 수렴,조약의 부속의정서에 덴마크와 관련한 일부 유보조항이나 예외조항을 두는 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이 단일통화와 사회정책에 관한 예외조항을 부속서에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점이 없지 않다. 이런 식으로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비준이 부결되는 나라마다 모두 예외조항을 요구하고 나옴으로써 조약의 당초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아일랜드는 자국헌법의 낙태금지조항과 관련한 부속서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조약의 비준여부를 묻기 위해 오는 18일 실시될 아일랜드의 국민투표 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덴마크에 이어 아일랜드에서마저 비준이 부결될 경우 유럽통합은 중대한 시련을 겪게될 것이기 때문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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