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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없는 성장'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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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제조업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 경제구조가 고도화할수록 산업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은 줄게 마련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를 봐도 대개 1970년대 제조업 취업자 비중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이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일 낸 자료를 보면 한국은 89년 제조업 취업자 비중이 27.8%로 최고점에 달했다가 내리막길을 걸어 지난해 18%로 줄었다.

연평균 0.58%포인트씩 준 셈이다. 이런 감소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영국(-0.61%포인트)에 이어 둘째로 빠르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비중으로 떨어지는 데 두 배 가까운 30년이 걸렸다.

누가 뭐래도 한국의 주력산업은 여전히 제조업이다. 자동차.반도체.조선.전자.석유화학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국내총생산(GDP)의 제조업 비중도 28%나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조업 취업자 비중이 급감하는 것은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최근 성장 정체의 돌파구로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가 자주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제조업을 등한시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다시 성장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 제조업의 힘이 든든히 받쳐준 때문이다. 제조업이 제대로 돌아가야 금융도, 서비스업도 클 수 있다.

제조업 취업자 비중이 주는 일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생산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고용을 늘리는 묘책은 뭘까. 바로 제조업의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규모를 확실하게 더 키우면 '고용 없는 성장'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매출(2004년)을 다 합쳐도 미국의 상위 3개, 일본의 12개, 중국의 34개 기업 수준에 그친다는 통계가 있다. 기업이 커졌다고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숨가쁘게 성장한 우리 제조업은 근래 주춤거리고 있다. '샌드위치 코리아' 현상이다. 제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없애고, 성장 동력 회복에 국가적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현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