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잔인했다-김중하<부산대 교수·국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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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그럭저럭 5월도 끝나가고 있다.
5월은 법의 날(1일)로 시작해서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8일), 권농일(26일), 거기다 석탄일(10일)까지 끼여있어 1년 중 「무슨 날」이 가장 많고 그만큼 행사도 많은 달이다.
그런데 이런 날들은 대체로 관제행사의 성격이 강해 행사를 위한 행사로 떨어져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상업성까지 한몫 크게 작용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은 선물꾸러미라도 들고가 반드시 물질적인 보상을 해야 하는 날쯤으로 변질되어 가는 듯하다.
이것은 기념일이 그 뜻을 새져보고 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루가 아니라 겉치레로 때우고 마는, 하루만 넘기면 그만인 일과성 행사로 흐려져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기념이란 낱말 자체가 마음에 깊이 새져둔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해서 오늘이 무엇인가 달라져야 하고, 달라진 만큼씩 우리도 새롭게 탄생하며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하겠는데 그런 뜻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게 요즘의 기념일 행사다.
겉치레 일과성 의식은 그래서 정작 기억해야 하고 기념해야 할 날들의 의미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5월16일, 18일이 그 날들이다.
민주시민의식의 발현과 무력에 의한 권력구조의 변개가 다 이 5월에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아이러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되새겨 보아야할 달이 5월이다.
더구나 올해의 5월에는 정당마다 차기 대통령후보선출이라는 큰 정치행사들을 치렀다. 5월이란 달에 역사적인 의미를 하나 더 보탠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보어 주는 행태는 어떤가. 성숙한 민주의식·정치의식보다는 대권에의 집착이요, 명분을 앞세운 세력권 조정이며, 이해득실이 따른 편가르기·줄잡기며, ,새로운 정경유착의 장외 게임이었다.
가장 평범한, 그리고 사회의 기층구조로서의 서민의식과 높은 차원의 정치의식을 함께 보여 주었어야 할 역사의 달 5월의 행사가 겉치레일과성으로 끝나고 아집과 이기주의의 난투장으로 치닫고 있으니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진정 「5월은 잔인한 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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