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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왕따 주식 사들인 ‘역발상의 귀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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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24면

지난 9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는 대표적인 전통 산업이자 사양 업종으로 통해온 철도 회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다. ‘오마하의 현인’, ‘가치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77·사진)이 운영하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미국 2위의 철도 업체인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의 지분 10.9%를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경제뉴스 채널인 CNBC는 버핏이 이 회사뿐만 아니라 또 다른 두 개 회사의 주식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나의 투자, 나의 성공 워런 버핏

세간의 관심은 버핏이 왜 192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철도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는가에 모아졌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에서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철도 운송량이 늘고 있다는 점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실제 지난 1년 동안 미국의 철도 화물 운송량은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하지만 버핏이 그런 이유만으로 철도 회사 주식을 샀는지는 분명치 않다. 항상 버핏은 왜 주식을 매입했는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버핏이 철저한 가치투자자라는 사실이다. 가치투자란 내재 가치에 비해 싼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는 투자법이다. 그는 시장도 보지 않고 업종도 보지 않는다. 기술주인가 굴뚝주인가도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기업 자체만 볼 뿐이다. 그가 1956년 단돈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50년 만에 430억 달러(약 42조원)를 벌어들인 비결이다.

가격이 낮게 거래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인기가 없어야 한다. 오히려 시장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야 가격이 싸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치투자는 `역발상의 투자`이기도 하다.

버핏이 63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투자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당시 뉴저지의 한 회사에 1억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떼였다. 60달러였던 주가가 두 달만에 35달러로 폭락했고 증시엔 파산설이 나돌았다. 버핏은 이때 자신이 사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한 스테이크 전문점을 찾았다. 하루 종일 계산대 뒤에 서있던 그는 고객들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전과 다름없이 사용하고, 업주들도 결제 여부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그가 35달러에 산 주식은 5년 뒤 185달러까지 치솟았다. 철도 업종도 사양 산업이란 이유로 시장에서 인기가 없고,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싸졌기 때문에 사들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버핏이라고 해서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2000년 정보기술(IT) 주식이 폭등했을 때 그는 안팎의 우려에 시달렸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떠오르는 IT주식을 외면하고 줄기차게 굴뚝주만을 고집했다. 코카콜라ㆍ질레트 등 주요 투자종목의 주가가 급락하며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도 23%나 곤두박질쳤다. 2004년 상반기엔 달러 약세를 예측하고 180억 달러어치의 외국통화 선물환을 사들였다가 달러가 거꾸로 움직이는 바람에 몇 달 만에 6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월마트 주식을 사지 않아 100억 달러를 벌 기회를 놓쳤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버핏의 선택은 항상 옳았던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 30년간 연 평균 24%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린 것은 ‘모르는 회사엔 투자하지 않는다’, ‘능력 범위 안에서 투자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고집스레 지켜온 덕이다.

최근 버핏의 행보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를 부쩍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이전까지 버핏은 단 한 차례도 해외 기업에 투자를 한 적이 없었다. 이런 버핏이 태도를 바꾼 것은 달러 약세 때문이었다. 지속적인 달러 약세를 예상한 버핏은 최근 유로ㆍ원화ㆍ캐나다 달러 등을 사들이고 해외기업의 주식도 매입했다. 중국의 정유회사인 차이나페트롤리엄과 이스라엘의 절삭공구 업체 IMC 등을 사들였다. 포스코와 대한제분 등 한국 주식에도 1억 달러를 투자했다. 버핏은 지난해 아이오와대와 테네시주립대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에게 한 강연에서 “이중으로 돈을 벌게 해준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와 주가 상승으로 그의 한국투자 수익률은 100%를 훌쩍 넘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버핏이 해외 주식을 산다고 해서 투자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를 산다’는 시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포스코 주식을 샀다고 해서 그가 한국 증시 전체를 좋게 본다고 해석하긴 곤란하다. 버핏과 같은 가치투자자들은 시장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보다는 비즈니스 자체의 좋고 나쁨만을 따질 뿐이다. 버핏이 포스코와 대한제분 외에 한국의 어떤 종목에 더 투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기준으로 투자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비즈니스든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에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는 기업을 고르는 것이다. 1919년 공개된 코카콜라를 전형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동안 공황이 있었고 전쟁도 있었다. 설탕값은 급락과 급등을 거듭했다. 100만 가지도 넘는 변수들이 있었다. 주식에 뛰어들 것이냐 마느냐로 고민하는 것보다 그 상품이 경제 상황을 얼마나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버핏은 현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갑부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운전사나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오마하 근처에서 그와 만난 사람들은 중고 링컨 콘티넨털을 직접 몰고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다들 놀란다. 지난해 6월 전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놓은 그는 “돈을 제대로 쓰는 게 벌기보다 훨씬 어렵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키로 한 것은 돈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15%도 그가 사망한 뒤 모두 사회에 환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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