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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그에게 필요한 건 매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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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7면

1999년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을 때의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기억하는가. 당시 그의 나이는 만 19세. 아직 앳된 얼굴, 프로로 전향한 지 고작 넉 달 정도 지났을 때다. 대회 마지막 날 가르시아는 이야깃거리를 쏟아낸다.

16번 홀에서 가르시아의 티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나 고목 바로 아래에 떨어졌다. 가르시아는 눈을 질끈 감고 강한 페이드샷을 날려 공을 그린에 올려놓았다. 가르시아는 갤러리의 환호 속에 공이 떨어진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영양처럼 페어웨이를 껑충껑충 뛰었다. PGA투어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그림 같은 샷에 반한 경기위원은 그린을 향해 걸어가는 가르시아의 등을 두드렸다.

18번 홀을 파로 마무리한 가르시아는 대회 본부에서 스코어를 확인하다 말고 TV 카메라를 향해 익살맞은 손짓을 해 보였다. 18번 홀 그린 근처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타이거 우즈의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얼른 다가가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기도 했다. 유럽 신사와 철부지의 ‘두 얼굴’을 가진 그는 우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가르시아는 우즈에 맞설 유일한 라이벌로 성장할 듯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기대했던 것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직 메이저 우승 경력이 없다. 2005년 이후로는 PGA 투어 정규대회 우승도 기록하지 못했다. 한때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으나 이번 주 현재 14위까지 밀렸다. 지난주 마스터즈에서는 10오버파로 컷 통과에 실패했다.

가르시아의 나이는 올해 27세. 일반적으로 골퍼들의 전성기는 30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록한 프로 12승(PGA 투어 6승, 유러피언 투어 6승)은 대단한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라이더컵에 네 번이나 출전해 14승3무3패의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활약도 골프팬의 눈높이에 맞추기엔 역부족인 모양이다. 가르시아에게는 그에게 쏟아지는 기대가 부담이 됐는지 모른다. 99년 PGA 챔피언십 이후 가르시아는 경기 중 엉뚱한 행동으로 팬들을 놀라게 하기 일쑤다.

그해 가을 열린 월드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발이 미끄러지면서 티샷이 러프에 빠지자 골프화를 벗어 갤러리들에게 던져버렸다. 한 관중이 그 골프화를 받아 다시 페어웨이에 던졌다. 이듬해 고향 스페인에서 열린 볼보 마스터즈에서는 프로암 경기 도중 아마추어 파트너와 말다툼을 벌인 뒤 경기도 마치지 않고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그뿐인가. 2001년 호주에서 열린 그레그 노먼 홀든 인터내셔널에서는 드롭 실수로 2벌타를 받고 우승을 놓치자 경기위원을 탓했다. 2002년 US오픈에서는, 그의 왜글에 야유를 보내는 팬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난달 말 CA 챔피언십 마지막 날에는 파 퍼트를 놓치자 홀에 침을 뱉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계속 이러다간 ‘악당’으로 낙인 찍힐 판이다.

가르시아에게 아직은 기회가 남아있다. PGA 투어 56승에 빛나는 우즈와 가르시아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가르시아는 라이더컵에서 증명했듯, 큰 무대에서 우즈에 필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골프팬들은 이 배짱 좋은 스페인 청년의 반격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르시아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정상에 돌아오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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