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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변호사 '고무줄 수임료' 조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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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0면

“수임료 장부는 아버지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한국 변호사들의 철칙 중 하나다. 그만큼 변호사의 수입은 철저히 장막에 가려져 있다. 여기에 국회가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법률 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일련의 입법 과정에서 법조계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국회 법사위는 ‘변호사 수임료 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14일 첫 회의를 열었다. 외부 단체에 조사 용역을 주고 의원들이 실태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소위 위원장인 김동철(열린우리당) 의원은 “수임료의 불투명성을 걷어내지 않고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수임료를 변협에 보고하도록 하는 법안이 6일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변호사 관련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변호사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변호사 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대법원장ㆍ대법관ㆍ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때마다 과다 수임료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사 개업 1~2년 만에 재산이 10억원, 20억원씩 늘어난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개업 6년간 60여억원의 수임료 소득을 올렸다.

변호사 관련 법안 현황 

문제는 의사 등 다른 전문직종과 달리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공정 가격’이 없다는 점이다. 2000년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보수 기준이 폐지되면서 가이드라인이 사라졌다. 변호사가 일한 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는 ‘타임 차지’는 일부 로펌에서만 적용하고 있다. 대형 로펌의 경우 시간당 70만~80만원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임료는 소송 액수, 변호사의 자질, 사건의 난이도, 의뢰인의 재정상태 등을 감안해 결정된다. 대부분은 착수금을 받고 재판 결과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는 형식이다. 성공보수는 변호사와 의뢰인이 흥정하기 나름이다. 보통은 법지식이 부족하고 당장 사건에 목이 매인 의뢰인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착수금을 적게 내놓으면 변호사의 과도한 성공보수 요구도 받아들여야 한다. A변호사는 국가 토지 수용에 관한 분쟁을 승소로 이끈 뒤 보상금의 40%인 79억원을 성공보수로 챙기고도 세무서에 1억원으로 신고했다가 지난해 들통이 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판에서 졌을 때는 물론이고 이겼을 때도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가 틀어진다. B변호사는 1995년 C씨의 의뢰로 종중(宗中) 임야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 재판을 맡았다. 착수금 500만원에, 승소할 경우 임야의 22%인 545평(시가 1억5000만원)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 재판에서 C씨가 승소했다. 그런데 이번엔 변호사와 C씨 사이에 수임료를 둘러싸고 송사가 벌어졌다. 5년을 끌며 대법원까지 가서야 ‘12%’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수임료 문제로 변협에 진정을 하거나 소비자보호원에 상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2005년에 800건을 넘어섰다. D씨는 착수금 2000만원을 받은 변호사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사건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자 소보원에 상담을 신청해 1500만원을 돌려받았다.

변호사들은 “대다수는 성실하게 변론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고 항변한다. 의뢰인들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라 다툼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법무법인 ‘태일’ 김주덕 변호사는 “성공보수를 떼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우리 사무실에선 이 경우 손실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협 이진강 회장은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시간제 보수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이 아닌 개인 고객들은 정액제를 선호한다. 고액을 내놓기 어려운 서민들이 법률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지는 것도 시간제 도입에 걸림돌이다. 백윤재 변호사는 “시간제를 기본으로 하되, 성공보수제도 부분적으로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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