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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변화 강요당했지만 적대적 신념 안 바뀌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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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4면

지난 6일 서울대에서 부시의 대북 정책을 놓고 대담하는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왼쪽)과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력 동원을 결코 고려하지 않았다”는 스트라우브의 지적이 주목을 끈다. [신인섭 기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새 대북 정책은 전략적 변화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궤도 수정인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본격적인 양자협상에 나서면서 갖게 되는 물음이다. 부시 대통령의 부정적 대북 시각이 바뀌었는지도 궁금하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한국과장과 일본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겸임교수와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대담을 통해 이런 문제를 짚어봤다. 스트라우브 전 과장은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 와 있다. 대담은 6일 이뤄졌다.
 
이근(이하 이)=한국 사람들은 한반도가 미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현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한반도의 위치는 그렇게 높지 않다.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지역에 대한 정책은 일관성을 갖기 힘들고, 또 체계적으로 수립되지 못하기 일쑤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 정책은 특별한 정책이 없이 강경 기조만을 반복했다고 본다. 부시 1기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급선회하는 美 대북 정책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이근 서울대 교수 대담

스트라우브(이하 스)=1기에는 북한이 미국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었다. 우선순위 4, 5위 안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최우선 관심사는 9·11테러 이후 이라크였다. 부시 대통령은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이고 기아(飢餓)에 허덕인다. 부시의 대북 정책에 더 복잡한 의도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부시는 진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쁜 사람이라고 믿었다. 부시는 리더십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비춰 북한의 체제와 지도부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단순했다. 부시는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일종의 거래(bargaining)로 이해했고, 2002년 여름까지 북한과 협상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해 북·미 회담(제임스 켈리 차관보 방북) 직후, 북한은 곧바로 제네바 합의를 폐기했다. 그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양자회담을 원했으나 부시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모델 중에 관료정치 모델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각기 시각과 이익이 다른 부처가 다투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시 1기의 대북 정책 결정 과정도 이러한 측면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협상을 중시하는 파월 국무장관과 원칙주의적 강경책을 가졌던 체니 부통령·럼즈펠드 국방장관 간 세력다툼으로 합의 도출이 어려워 미국이 소극적인 대북 정책을 편 것은 아닌지.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에 가깝다.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파월 국무장관과 체니 부통령·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서로 다른 시각을 고수했다. 파월은 외교적 해결책을 바랐지만, 서로의 시각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두 진영 사이에는 전쟁과 같은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 정책에 대해 토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두 진영은 결코 합의에 이른 적이 없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러한 가정하에서는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 정권의 교체다. 이라크전을 보아서 알지만 이는 네오콘의 대외 관계 철학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 부시 행정부에서 북한의 정권교체나 군사력 동원 논의를 한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다. 북한이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대북 정책 접근법 등을 놓고 정부 내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권교체가 부시 행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오해를 샀다. 소수의 미국 관료들이 군사력 동원을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 적은 있지만, 부시는 결코 군사력 동원을 고려한 적이 없다.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네오콘의 기조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전 국방부 부장관), 존 볼턴(전 국무부 차관·전 유엔대사)과 같은 네오콘 인사들이 제안한 특별한 정책이 있었나. 그들이 대북 정책에 끼친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나.

=부시는 흑백논리로 사물을 보는 사람이고, 북한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시각의 바탕 위에서 네오콘이 기용된 것이다. 체니, 럼즈펠드, 로버트 조셉(전 국무부 차관) 등이 강경책을 주장하는 두드러진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부시와 체니는 이미 완고한 시각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정책화하는 것을 조셉 같은 관료들이 했다. 파월은 백악관 비확산담당 국장이던 조셉에게 압도당했다(overruled).

=미국이 대북 정책을 점진적으로 바꾸면서 당근과 채찍의 비율을 상당히 합리적으로 조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대화조차 거부했던 부시 1기의 대북 정책에 비춰보면 최근의 양자협상은 큰 변화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화의 중요한 이유는 북한 핵실험이다. 아무리 부시 대통령이라도 이것을 두고 자신의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 핵실험은 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는 이라크 상황 때문이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정부의 강경파들이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변화의 토대가 마련됐다. 럼즈펠드는 마지막에 공화당 내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새 대북 정책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왔다. 부시는 변화를 강요당했지만, 개인적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공화당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진 이유 중 하나는 이라크전을 둘러싼 부시 행정부의 정책실패 때문이다. 이 실패의 한 부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정보와 증거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해 보다 정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최근 미국에서 북한의 HEU 정보 평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평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HEU가 미국의 새 고려사항이 되었다기보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협력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공식 발언에서 부드러운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서로 다른 기관들이 HEU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항상 그랬었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변화로 보지 않는다.

=최근 대북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부시, 라이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사이에 직접 대화 라인이 구축된 것 같다. 이것은 대북 정책 결정에 있어서 라이스 장관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것을 의미하는데, 그의 부상이 국무부의 영향력을 키웠다고 보는지.

=라이스의 영향력은 파월이 국무장관이었을 때보다 크다. 라이스와 부시는 가까운 사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 같았던 부시와 파월의 관계와 대비된다. 그렇다고 국무부의 직업외교관의 역할이 커진 것은 아니다. 국무부는 임명직(appointee)이 가장 많은 부서다. 직업외교관이 임명된 정치세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매우 미약하며, 주요 정치적인 결정은 대부분 다른 곳들(places)과 연합해서 이뤄진다.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초기 조치를 담은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 돈 2500만 달러 반환 문제, 핵 불능화 조치, 핵사찰 문제, ‘과거의 핵’, HEU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북한이 생존수단인 핵을 쉽게 포기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13 합의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보나.

=북한의 핵위기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해결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내년 말까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모순이 적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긴 하지만 정책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정책은 당면한 상황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 라이스가 부시에게 제안하면 부시가 그때그때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이 일관성을 갖기 어렵다. 북한도 예전 상황과 많이 바뀌었다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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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우브 교수는
켄터키 루이빌대 졸업
주한 미국대사관 근무
주일 미국대사관 정치부 근무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 과장
국무부 정무차관 보좌관
국무부 일본과장

●이근 교수는
위스콘신 주립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전문가 위원
외교통산부 자문위원
국방부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 실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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