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매 가진 주식 발굴해야 돈 벌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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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23면

‘장기 투자를 하는 사람들 중엔 장수(長壽)하는 사람들이 많다’.

102세 최고령 투자자 어빙 칸

가치투자자들 사이에서 흔히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긴 호흡으로 투자하다 보니 생명도 길어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바로 어빙 칸이다. 그의 나이는 102세로 지금도 현역이다. 일주일에 5일 출근하고, 하루 8시간 일을 한다. 1928년에 월가에 입문했으니 투자 경력이 79년이나 된다. 월가에서는 그의 투자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칸 집안의 장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두 누이의 나이는 각각 104세, 100세로 장수 집안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생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칸 집안의 장수 비결을 연구하기도 했다.

현역으로 최고령 투자자인 칸의 투자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가치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칸은 그레이엄의 조교로 월가의 성경으로 꼽히는 명저 ‘증권 분석’의 통계작업을 도왔다. 그레이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들의 이름에 그레이엄을 넣었을 정도다. 1996년 사망한 아내 루스도 그레이엄의 증권 분석 강좌를 들으며 만났다. 대학을 중퇴하고 증권 브로커 회사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던 칸은 직장 상사로부터 그레이엄에 관한 얘기를 듣고, 그를 찾은 뒤 평생 그의 사도가 된다. 칸은 78년에 자신의 두 아들 앨런, 톰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칸 앤 브라더스’라는 투자 자문사를 설립했다. 공모형 뮤추얼 펀드는 운용하지 않고, 자문 서비스와 함께 자신들의 돈을 직접 운용했다. 78년부터 94년까지 그가 올린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16.6%로 벤치마크 지수인 S&P의 상승률 11.5%를 5%포인트 이상 웃도는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

칸은 환율ㆍ금리ㆍ정부정책 등 거시적 지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개별 종목에 초점을 맞추는 상향식(Bottom-Up) 투자를 했다. 철저히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가치에 비해 가격이 낮은 종목을 매입해 3~5년가량 보유했다. 그는 “가치투자는 가격에 초점을 맞추는 투자 철학”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식은 언제 제 가치를 인정받을까. 칸은 ‘촉매’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시장은 어떤 계기를 통해 주식의 가치를 다시 인정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바로 촉매다. 촉매가 없는 주식은 저평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평범한 수익밖에 올리지 못한다.”

칸은 일생에 걸쳐 ‘투자’라는 일을 사랑했다. 그는 은퇴라는 말이 나오면 콧방귀를 뀐다. “나는 투자라는 비즈니스와 결혼한 것 같다. 투자란 나와 함께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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