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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우울증 이겨낸 두 메이저리거의 귀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호 17면

2005년 10월, 스산한 가을 밤 2시쯤. 조시 해밀턴(26·사진 위)은 코카인에 찌들 대로 찌든 몸을 이끌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외할머니 집의 초인종을 눌러댔다. 체중이 18㎏이나 빠지고, 나흘 동안 잠을 설친 해밀턴의 수척한 모습 탓인지, 메리 홀트는 그날 밤 자신의 손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를 알아볼 수 없었던 건 당시 야구팬들도 마찬가지. 해밀턴은 1999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됐던 외야수 유망주였다. 192㎝ㆍ107㎏의 당당한 체격에 장타력과 수비능력을 겸비했고, 2000년에는 USA 투데이 지가 선정한 올해의 마이너리그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 시절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시달리던 중, 지루함을 달래려던 해밀턴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400만 달러에 가까운, 당시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계약 보너스를 약물과 재활치료에 거의 모두 탕진하고,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6월 제재가 풀린 후 해밀턴은 마이너리그 15경기에 출전했다. 7월 말 얻은 무릎 부상으로 마이너리그 시즌마저 일찍 접어야 했던 해밀턴은 올봄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소속 신시내티 레즈의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해밀턴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4할이 넘는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드래프트 7년 만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노리고 있다. 주전 중견수 켄 그리피 주니어가 부상으로 시즌 초반 출장이 불투명한 가운데, 해밀턴은 애덤 던ㆍ 라이언 프릴과 함께 레즈의 개막전 외야진을 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긴 공백에서 벗어나 컴백을 노리는 젊은 선수가 또 있다.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오른손 투수 잭 그레인키(사진 아래)다. 만 23세의 그레인키는 인기 주간지 스포팅 뉴스가 2003년 최고의 마이너리거로 선정한 바 있다. 최고 구속 151㎞에 달하는 직구와 80㎞짜리 커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테크니션이다. 하지만 작년 2월, 포수 존 벅과 투구 훈련을 하던 그레인키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감독 버디 벨에게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부상은 아니었다. 그의 차분한 외면 뒤에는 우울증과 사회공포증(social anxiety disorder)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레인키는 치료를 받기 위해 바로 팀을 떠나 고향인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향했다. 6월부터는 로열스 산하 더블A팀의 선발로 나서며 8승 3패, 방어율 4.34을 기록했고, 9월말에 메이저리그로 복귀해 6과 3분의 1이닝을 던졌다.

그는 한때 야구가 죽도록 싫었다고 한다. 2005년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17패를 당한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 되었다. 차라리 타자나 구원투수로 전향하거나, 아예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방망이를 껴안고 울며 잠을 청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각종 치료제와 장기간 심리 상담을 통해 많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올해 20대 투수들로만 짜인 로열스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한 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때 ‘제2의 그레그 매덕스’ 로 주목받던 그레인키가 그 잠재력을 발휘하는 날이 영영 안 올지도 모른다. 만년 꼴찌 로열스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에이스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니, “묵묵히 5선발 자리를 지키는 게 편하다”고 하니 말이다.

로열스가 전지 훈련을 하는 도시는 애리조나주의 서프라이즈(놀라움)라는 곳이다. 올 시즌 해밀턴과 그레인키가 야구팬들에게 어떤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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