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 수퍼스타 워홀 자본주의 신화로 컴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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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02면

미국이 20세기에 낳은 가장 ‘미국스러운’ 대중예술가 앤디 워홀(1928~87)은 말했다.

‘앤디 워홀 팩토리’전 #6월 10일까지 삼성미술관 Leeum #문의: 02-2014-6901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간의 명성을 누릴 것이다.”

매스 미디어 시대를 일갈하는 유명한 이 한마디의 발설자답게 그는 15분이 아니라 적어도 수십 년은 명성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망 20주기를 맞은 올해, 워홀은 경매에서 파블로 피카소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고 많이 팔리는 주인공이 됐다(Artprice.com). 전 세계를 도는 그의 회고전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워홀은 성공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젊은 미술가의 본보기다.

‘가장 혁신적인 미술가가 미래의 미술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미술 비즈니스맨의 논리를 따르자면 워홀이야말로 이 법칙에 딱 들어맞는 작가다. 그는 죽기 전에 떠들었다.

“내 그림들은 IBM 주식 같은 겁니다. 바로 지금이 살 때라고요!”

과연, 그의 그림은 돈 냄새를 몰고 다닌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Leeum 외벽을 두른 그의 저 유명한 ‘캠벨 수프’ 깡통 연작을 보고 주민들은 무릎을 쳤다. ‘삼성이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나. 미술관을 대형 할인매장으로 바꿨으니.’ 무덤 속 워홀도 좋아했을 것 같다.

그가 원한 것은 발터 벤야민이 일찍이 갈파했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었다.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 즉 공장이라 부르며 사람을 고용해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실크스크린 작품을 찍어냈다.

삼성미술관 Leeum은 기획전시실을 바로 팩토리 스타일로 꾸미고 실크스크린ㆍ조각ㆍ사진ㆍ영화ㆍ드로잉 등 205점의 워홀 작품을 걸었다. 그의 캔버스 안에 무감각하고 차갑게 박제된 스타들은 엑스포에 진열된 상품처럼 보인다. 그 정점은 워홀 자신이다. 팩토리가 풍기던 특이한 광기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감전된 사람처럼 삐죽 솟구친 가발을 쓴 자화상 연작은 이 그림에 붙여진 ‘깜짝 가발’이란 애칭 그대로 워홀의 ‘깜짝 쇼’를 상징한다.

워홀이 제작한 영상작품 8편은 ‘움직이는 영화를 움직이지 않게’ 만든 워홀의 또 다른 명성을 보여준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그의 영화는 볼거리라기보다는 얘깃거리다. 그가 찍은 흑백사진들은 과거로의 여행이다. 60~70년대 미국 대중문화계의 다양한 인물이 거기서 회고 조로 돌아온다.

신문에서 잘라낸 사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워홀의 작품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이게 바로 워홀이 노린 것, 매스 미디어와 대량생산을 미술품이란 아우라로 접목하고 포장한 아이디어의 승부다. 그는 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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