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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들려오던 신비한 그 음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호 21면

SF영화의 고전으로 알려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주 특이하게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되어도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채 한동안 음악만 들려오기 때문이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신비한 음악이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몸이 지상에서 이탈해 먼 우주 공간을 헤엄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큐브릭 감독은 이런 방식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우주로 진입하는 통과의례를 치르게 한다.

리게티 추모음악회 #진은숙의 2007 아르스 노바Ι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5일 오후 6시 세종 체임버홀 #문의: 02-3700-6300

이때 극장 안을 가득 메운 이 신비로운 음악은 무엇일까. 단순히 효과음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죄르지 리게티(1923~2006)가 작곡한 ‘아트모스페르’라는 음악이다. ‘분위기’ 혹은 ‘대기’로도 번역되는 ‘아트모스페르’는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말 그대로 영화의 초현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큐브릭은 이 곡 외에 리게티의 ‘레퀴엠’과 ‘영원의 빛’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는데, 작곡가의 허락을 받지 않아 법적 소송까지 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6년간의 소송 끝에 리게티의 손에 들어온 저작권료는 고작 35만원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작품성과는 별개의 의미로 유명세를 타게 된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가 이번에 한국에서 초연된다.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 진은숙이 직접 기획하는 ‘진은숙의 2007 아르스 노바 Ⅰ’을 통해서다. 오는 22일과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세종 체임버홀에서 각각 열리는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진씨의 스승인 죄르지 리게티의 메모리얼 콘서트로 꾸며진다.
리게티는 루마니아에서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나 인생의 후반부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이민자 신분으로 살았다. 이런 특이한 이력 때문일까. 그는 예술적으로도 늘 탈주의 길을 모색했던 자발적 에트랑제였다. 치열한 실험정신과 탐구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로의 음악적 망명을 시도했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새롭고 흥미진진한 경험이 된다.

이번에 열리는 리게티 메모리얼 콘서트에서는 리게티 자신의 작품과 함께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스트라빈스키, 드뷔시의 작품,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진은숙, 낸캐로우, 아브라함센, 폴 하만의 작품이 소개된다. 리게티를 매개로 하는 거대한 현대음악의 물줄기를 따라가는 연주회인 것이다.

2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관현악 연주회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아트모스페르’ 외에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된다. 지휘자는 현대음악의 탁월한 해석가로 알려진 파스칼 로페, 협연자는 현대음악 연주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다.

25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연주회에서는 리게티의 ‘실내협주곡’과 ‘100대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사진)가 소개된다. 메트로놈 100대가 동시에 울리면 어떤 소리가 날까? 그 이벤트성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끄는 연주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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