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간 ‘호감·비호감’ 알면 판세 보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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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5면

앙금 쌓인 이명박-박근혜

지지율 1, 2위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옆자리에 앉아도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찬 기운이 감돈다. 이 전 시장은 얼마 전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공세에 대해 “쯧쯧…”하며 혀를 차곤 했다. 박 전 대표는 어떨까. 캠프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 전 시장의 ‘시베리아 발언’-“(손 전 지사가) 안에 남아도 시베리아에 있는 것이지만 당 밖으로 나가도 추운 곳으로 나가는 것”-이 거론됐을 때다. “얘기가 나오자 박 전 대표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아이-’라고 하시더군요. 별말씀은 없었지만, 어떤 느낌인지 전해지더군요.” 참석자의 전언이다. 캠프 참모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갖는 느낌은 ‘좋은 감정’과 확연하게 다르다.

두 사람은 2006년 3월 정면 충돌했다. 이 전 시장은 당시 박 대표가 주도한 사학법 개정 반대 장외투쟁을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는 곧바로 “당을 희생양 삼아 개인플레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이 전 시장은 장외투쟁이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고, 박 전 대표는 정체성과 원칙을 건드린다고 받아들였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이 전 시장이 중시하는 ‘실용’과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박 전 대표가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원칙’은 현안에서 충돌하게 마련인 개념이다.

두 사람 사이에 언제부터 감정의 골이 파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1970년대 후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때 박 전 대표는 퍼스트 레이디였고, 이 전 시장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국정 파악이 가능했던 박 전 대표는 기업인들의 삶을 소상하게 알 수 있었고, 굴지의 대기업 사장이었던 이 전 시장도 청와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로 진면목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장점과 성취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선 주자들의 불편한 관계는 절대로 개인적인 일로 끝나지 않는다. 좋고 싫음이 신뢰와 불신을 낳고 그것이 결국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정치에서 화해와 화합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희대 임성호 교수는 “정치의 규칙이 선진국처럼 확립돼 있지 않은 한국에선 정치인 사이의 감정의 앙금이 정치권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분석은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에 대입해볼 수 있다. 이 전 시장의 ‘시베리아’ 발언을 들은 손 전 지사는 격노했다. 지지율이 뜨지 않아 코너에 몰린 자신을 인간적으로 모욕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를 깨문 그는 측근 참모에게 “정치인의 말은 품격이 있어야 하는데…”라며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가 한나라당 탈당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베리아를 넘어가겠다”고 한 것은 앙금이 가시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박 전 대표와 손 전 지사의 관계는 손 전 지사의 탈당 전만 해도 좋은 편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따금 “손 전 지사는 잘하실 거예요”라고 호평했다. 손 전 지사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업적을 높이 평가했고, 2005년 10ㆍ26추도식 때는 이른 아침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관계도 180도 달라졌다. 박 전 대표는 참모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손 전 지사를 비판했다. 신동철 공보특보는 “박 전 대표는 말을 바꾸는 사람과 배신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말했다.

극과 극, 이명박-정운찬

“반말을 섞어 쓰는 것 같습디다. 그럴 사이도 아닌데….”
범여권의 대선 주자로 구애(求愛)받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사석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해 한 말이다. ‘싫다’는 말은 한마디도 않았지만, 종합하면 ‘비호감’이다. 정 전 총장이 최근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해 “너무 거칠고 독선적”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2006년 자신이 서울시장 출마를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는데도 집요하게 권유하는 이 전 시장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이 전 시장 측의 설명은 딴판이다.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은 최근까지도 정 전 총장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편하게 여기고 대한 것이 뜻밖의 오해를 불렀다는 것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학자 정운찬과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CEO 이명박의 감정은 반대편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인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이 전 시장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 전 시장은 결코 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미지와 정 전 총장의 이미지가 상당히 겹친다”고 진단했다.

반면 박 전 대표와 정 전 총장 사이엔 긍정적인 느낌이 오간다. 이달 초 한나라당이 정 전 총장을 맹비난했을 때다. 캠프 관계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이 얘기가 나오자 박 전 대표는 “(당이) 그분에게 왜 그러는 거죠? 그렇게 하면 안 되죠”라고 했다. 얼마 뒤 정 전 총장은 한 사석에서 “박 전 대표는 원칙을 지키는 훌륭한 점이 있어” “품격이 있잖아” 등으로 호감을 표현했다.

거리 먼 정동영-김근태

정 전 총장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기고, 서울대 상대 1년 후배다. 그는 김 전 의장을 깍듯이 “김근태 선배”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경기고 시절 성경공부를 같이 했다. 정 전 총장이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도 김 전 의장의 권유였다. 정 전 총장은 정치인 김근태의 후원회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고, 김 전 의장은 정 전 총장에게 경제정책의 조언을 많이 구했다. 정 전 총장은 김 전 의장이 펴낸 에세이집에 “나의 삶은 김근태 선배의 영향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는 글을 적었다.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한다.

범여권의 강력한 라이벌인 김 전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사이엔 멀고 먼 거리감이 느껴진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 등 빈번했던 표싸움도 원인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김 전 의장은 신중하고, 정 전 의장은 의사결정이 빠른 것이 장점이지만 양쪽에선 그걸 장점으로 보지 않는다. 김 전 의장 측은 “정 전 의장은 문제를 안에서 해결하기보다 외부로 끄집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그걸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고, 정 전 의장 측은 “김 전 의장은 결정이 느려 답답하다”고 지적한다. 철학과 스타일의 차이가 감정으로 이어지고 장점을 단점으로 볼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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