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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생과 보통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미국부부 4쌍 중 1쌍은 이혼」. 이 제목을 본 노련한 선임편집기자가 『좀 네거티브한 표현이군』하면서 몇 자를 고쳤다. 「미국부부 4쌍 중 3쌍은 성공」. 그 말이 그 말이지만 뉘앙스가 얼마나 다른가.
어느 해 런던에 쥐가 들끓어 시 당국에서 「쥐잡이 모집, 많은 보수를 지급함」이란 광고를 냈다. 한사람의 응모자도 없었다. 그래서 광고회사에 의뢰했더니 카피라이터는 이를 「설치류 동물 수색원 모집, 시민위생에 매우 공헌하는 일임」이라고 고쳐 썼다. 설치류 동물이란 바로 쥐. 이번에는 18명이 응모했다.
「쥐잡이 모집」. 영국신사의 공지를 손상하는 표현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쥐잡이는 안 한다,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요즘 청소부를 환경미화원이라 부르고 있는데 썩 잘하는 일이다. 목욕탕의 때밀이도 목욕보조원이라 고쳐 부르는 것이 어떨는지.
미국의 원로 카피라이터J 케이플스는 중고차를 「Second Hand Cars」라 부르는 것이 못마땅했다. 생각 끝에 「Used Cars」라 부르자고 제창했다. 「사용된 차」, 얼마나 듣기 좋은가.
일본광고계에서는 청년·장년 다음세대를 숙년이라 부르고 있다. 인생의 원숙한 시기, 노년보다 얼마나 듣기 좋은가.
우리 나라 학교에는 우열반이란 것이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우등생이요, 못하는 학생은 뚝 떨어져 열등생이다. 50명 한 반에서 실질적으로 우등생은 5명 내외다. 그러면 나머지 45명은 모조리 열등생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들은 보통생이다.
열등생은 지능이 많이 모자라는 저능아나 정박아를 호칭할 때 쓰여야 마땅하다.
「나는 열등반」 「우리 아들딸은 열등생」이 얼마나 상처를 주는 말인가. 거기에 비해「나는 보통반」 「우리 아들딸은 보통생」하면 얼마나 듣기 좋을까.
보통사람의 시대라고 귀가 따갑게 외치고 있으면서, 왜 학교에서는 보통이란 용어를 쓰는데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나는 제창한다. 열등생은 보통생으로, 우열반은 우보반으로 고쳐 부르자고. 이낙운(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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