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의 붉은기(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세계 각국의 국기를 보면 도안과 문양·색깔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두가지 색깔로 2분하거나 세가지 색깔로 3분해 어린이들도 쉽게 그릴 수 있는 단순한 국기가 있는가 하면 복잡한 도안과 문양을 넣어 전문가도 손쉽게 그릴 수 없는 국기도 있다. 기독교국가가 많은 유럽에서는 십자가를 문양으로 쓰는 나라가 적지 않고,구소련을 비롯한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붉은 바탕에 별문양을 즐겨 사용한다.
세계 여러나라의 국기에 주로 쓰이는 색깔은 바탕의 흰색 이외에 빨간색·오렌지색·노란색·녹색·청색·하늘색·검은색·갈색 등 여덟가지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색깔은 빨간색. 2백71개국의 국기 가운데 2백30개가 빨간색을 사용해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국기에 빨간색을 쓰는 것은 눈에 잘 띄기 때문만은 아니다. 빨간색은 「혁명」을 상징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회주의국가의 국기는 빨간색을 주조로 하고 있다. 구소련의 국기를 「적기」라고 부른 것도 그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난 신생국가들의 국기에서도 빨간색이 많이 눈에 띈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흘린 고귀한 피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빨간색이라 해도 다같은 색은 아니다. 사회주의국가의 빨간색은 핏빛처럼 짙은 붉은색(적색)인데 비해 우리 태극기의 빨간색은 밝은 선홍색이다.
그 피와 혁명을 상징하는 북한의 인공기가 난데없이 대학가에 등장,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북한이 해방후 3년동안 사용했던 태극기를 폐지하고 이른바 신국기(인공기)를 제정한 것은 1948년이다. 그들은 이 새 국기를 만들면서 흰색은 예부터 우리 국민들이 즐겨 사용한 색깔로 순결과 주권의 상징,청색띠는 평화에 대한 소망,적색은 국민의 사회주의 실현,붉은 별은 새로운 국가를 창조하는데 있어 노동당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공기의 주조는 역시 붉은색이다.
바로 그 「붉은 깃발」 밑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슬처럼 사라져갔던 쓰라린 역사를 생각하면 대학가의 인공기는 너무나 철없는 짓이다.<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