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 부른 “방심운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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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처님 오신날 절에서 불공을 드린뒤 집으로 돌아가던 김현심씨(37·여·의정부시)는 파주∼서울간을 왕복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불안했다.
정류장에서 새로운 승객이 탈 때마다 버스운전사가 한손으로 핸들을 잡은채 운전을 계속 하며 다른 한손으로는 승객들의 요금을 받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오가 가까운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었음에도 차내는 절을 찾거나 휴일을 맞아 시립묘지에 성묘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김씨는 운전사에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요금을 다 받은후 출발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짜증섞인 고함소리가 무서워 엄두를 내지못했다.
앞을 보고 달려야 하는 운전사의 시선이 승객들의 손으로 자주 옮겨가는 것을 보면서도 「숙달된 운전솜씨가 있으니 저러는 것이겠지」하며 태연하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었다.
김씨의 걱정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우가 아니었다.
용미리 정류장에서 승객 5∼6명을 태운 시외버스는 운전사가 요금을 받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 다리에 난간 대신 설치된 높이 10㎝의 추락방지용 콘크리트벽을 향했다.
버스가 도로를 이탈하고 있음을 깨닫고 운전사가 급제동 페달을 밟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버스의 무게를 이기기에는 너무나도 허약한 콘크리트벽을 들이받고 버스가 튀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2m 아래의 개울에 처박혀버렸다.
볼썽사납게 구겨져 옆으로 길게 누워버린 사고버스 안은 다친 승객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허리에 중상을 입은 김씨는 48명의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부근을 지나다 사고를 보고 달려온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다.
『승객의 안전보다 운행시간이 더 중요한지 진작 알았다면 그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겁니다.』
응급실에 누워있던 부상자들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김씨의 말에 동의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사망자가 한명도 없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지만 기본안전수칙을 무시한 한 운전사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치고는 그 대가가 너무나 컸다.<파주=이동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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