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기자의헬로파워맨] 전국 투어 나서는 '라이브의 황제' 이승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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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의 황제' 이승철이 또 한번 대장정에 나선다. 5월 12일 수원을 시작으로 전국 30개 도시를 순회하는 2007 전국투어 콘서트다. 통산 공연 2000여 차례, 2002년 이후 매년 전국 공연을 여는 그는 지난해 '전국 전회 매진'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다. 익히 알려진 가창력뿐 아니라 '브랜드 콘서트'의 파괴력이라는 점에서도 '황제'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어느덧 데뷔 22년. 아직도 매년 신곡으로 가요 차트에 올라 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그다. 달콤하면서도 파워풀한 가창력, 멜랑콜리한 멜로디와 가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감성 발라드'의 주역인 그를 16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심각한 것은 딱 질색"이라며 시종 팔랑거렸지만 시원스러운 답 속에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번 공연의 포인트는 뭔가.

"공연만으로 생존가능한 가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신곡이 나와 팬층이 계속 넓어져야 하고, 공연 자체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내 관객은 10~60대다. 40% 이상이 '희야'(1985) 때 팬이고, 40%는 '네버엔딩 스토리'(2002)로 생긴 젊은 팬이다. 이번엔 나이 많은 관객을 위해 부가서비스가 있는 고가 VIP 티켓(12만원)도 내놨다. 기술적인 주안점은 음향이다. 국내 최초로 돌비 5.1시스템을 설치한다. 아무리 음향에 신경 써도 앞쪽 관객은 시끄럽네, 뒤쪽 관객은 안 들리네 불만이 많았다. 제작비가 전년의 세 배쯤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공연의 질은 자본이니까."

-MBC '무릎팍도사' 등 방송에서 한 말이 화제다. 마약은 굴욕감 때문에 끊었다, 재혼한 부인도 부자지만 나도 부자다, '소리쳐'는 표절이 아닌 부분인용이다 등.

"미국처럼 연예인 씹는 프로가 언제고 나올 줄 알았다. 사생활 보도에 대해서는 내가 연예인인 한, 기꺼이 껌이 돼 드리겠다는 자세다. 어쨌든 씹히는 거는 인기 있다는 방증이니까. 돈 문제는, 솔직히 연예인이 전셋방 살아야 표창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고 자기 위치 지키면서 팬 서비스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게 진짜 보답이다. 표절은, 아마도 내가 표절 갖고 '개긴' 최초의 연예인일 텐데, 표절이 문제없다는 게 아니라 원작자가 고소해야 성립되는 법적인 문제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예전에 비해 성질 많이 죽었다는 얘기가 많다.

"모 가수가 라디오에서 라이브 못하겠다고 하더라. 나도 그랬다. 요즘은 다르다. PD도 작가도 팬인데 원하면 어디서든 노래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네버엔딩 스토리'의 히트가 계기다. 그 전엔 '이승철도 갔다'는 말이 많았다. 노래가 터졌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감사의 마음을 알고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사람 변했다는 소리도 듣게 되고(웃음). 재혼도 변수였다. 결혼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

-음악 하는 자세도 달라졌을까.

"예전 공연은 내 음악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전투 같았다. 이제는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적 공감'이 더 중요하다. 팬들에 대한 감사도 깊어진다. 팬들을 보면 은퇴란 가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싶다. 사람들이 내게 준 행운이자 선물이 인기인데, 그걸 함부로 '이젠 됐거든' 할 수 있나."

-몸이나 목은 어떻게 관리하나.

"매일 아침 뛰고 공연 이틀 전부터는 술을 안 마신다. 이젠 공연 때가 되면 신체리듬이 아예 바뀐다. 목은 안 쓰는 게 관리다. 매일 노래 부르는 미사리 가수나 밤무대 가수가 탁성이다. 너무 안 부르면 감이 떨어지고. 나는 보통 때는 거의 노래를 안 부른다. 녹음할 때도 키만 맞추고 연습은 머릿속으로 한다. 자꾸 부르고 생각하면 '쿠세'(쓸데없는 폼)가 붙는다. 그룹이랑 맞춰야 했던 데뷔곡 '희야'를 제외하면 거의 전곡을 그렇게 녹음했다."

-특별한 징크스나 버릇은 없나.

"대부분 가수들이랑 달리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 7시 기상, 밤 11시 취침이다. 아내 왈 '세상이 궁금해서 잠도 못 자는 형'이란다. 녹음도 낮 3시~6시에 한다. 가사도 푹 자고 새벽 5시쯤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쓴다. 노래방이나 배경음악이 흐르는 곳엔 잘 못 간다. 아무리 작아도 음악소리가 하나하나 들어와 귀가 너무 피곤하다."

-추구하는 음악은 뭘까.

"내가 좋은 작곡가들에게서 곡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장르 불문, 작곡가의 요구대로 연주해내는 세션맨의 자세를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티스트도 뮤지션도 아니고 가수다. 장르에 대한 편견이나 고집도 없다. 그저 테크닉 좋은 세션맨처럼 전방위 음악을 소화하고 싶을 뿐이다. 내 음악이 상품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제작자 이승철이 키우는 가수나 상품으로 객관화시켜 바라본다."

-멜로디나 가창이 점점 편안하고 단순해지는 것 같다.

"때깔 좋은 노래는 2년 지나면 못 듣는다. 급격하게 촌스러워지고. 반면 처음엔 밋밋한 노래가 오래간다. 청바지처럼 말이다. 코카콜라 병의 단순한 디자인과 로고를 생각해보라. 작품도 뭣도 아니지만 결국은 그런 상품이 명품이 되고, 진품이 된다.

글=양성희 기자<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내가 보는 이승철은 …

두말이 필요 없다. 이승철은 노래 잘하는 가수다. 탁월한 가창력과 서정적인 '가요'로 20년 넘게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1985년 소녀팬들을 열광시킨 '희야'로 데뷔한 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소녀시대' '방황'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대마초 파문, 방송출연 금지, 이혼 등 여러 부침에도 '라이브의 황제' '가창력의 제왕'이라는 타이틀만은 내주지 않았다. '네버엔딩 스토리' '소리쳐' 등 2000년대 들어서도 히트곡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80~90년대 오빠 가수에 머물지 않는 현역인 것이다. 아이돌 이미지로 데뷔해 자신을 엔터테이너 가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음악적 기량을 인정받는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것은 쉽지 않은 성취다.

음악평론가 조성진은 이승철을 감성창법의 일인자로 꼽는다. "초콜릿이 혀에서 녹는 듯 감미롭게 속삭이다가도 고음역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맑고 안정되게 구사하는 창법"이라는 것. 어느 가수보다 긴 호흡을 안정적으로 구사하면서 발음까지 정확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조성진은 "이승철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보다 잘하는 쪽으로 기량을 키워온 완벽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실제 이승철의 공연에서는 '마지막 콘서트'의 "밖으로 나가 버리고" 중 30초 가까이 "고"를 끌면서 기량을 과시하는 것이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작사는 주로 하지만 작곡은 대부분 외부 곡을 받는다. 이문세.이승환.김장훈.윤도현 등 라이브로 먹고 사는 가수들과 함께 '브랜드 콘서트' 붐을 이끄는 주역이기도 하다.

달콤하게 애조 띤 가사와 첫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 덧붙여 가창력. 이승철의 연가는 트로트의 질박함 대신 팝 발라드의 세련됨이라는 외피를 입은 우리 대중가요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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